밤의 불안 극복하기: 박민하 개인전 《밤의 카르토그래피》

REVIEW

밤의 불안 극복하기
: 박민하 개인전 《밤의 카르토그래피

정경담 (『마테리알』 편집인)




화성에서, 로버(rover)는 용역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인간이 직접 탐사하거나 수색할 수 없는 원거리 공간에 시한부로 작동하는 로버들을 보내고 이름도 붙여 준다. 로버들은 광활하고 칠흑같은 무한의 진공 속에서, 알 수 없는 인력에 의해 공중에 붙어 있는 행성의 표면을 기어다닌다. 그들은 인간에게 소여되지 않은 땅을 파악하기 위해 일한다. 조르주 페렉이 『공간의 종류들』의 서문에서 ‘공간’을 “단지 침묵만 이어지다가 결국 두려움 비슷한 무언가를 촉발시키는 무한대의 공간들이 아니라, 혹성 간이나 항성 간 혹은 은하계 사이의 이미 거의 파악된 공간들이 아니라, 적어도 원론상으로는 훨씬 더 가까운 공간들”로 설명했듯이, 인간이 로버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화성이라는 미지의 행성을 인간의 코드로 번역해 파악 가능한 공간으로 변태시키고 두려움을 잠재우는 일이다. 노동자의 과업이란 이윤을 낳는 것이므로 인정상 로버에게 뭐라도 떨어지는 게 마땅하겠지만 로버들은 노조도 없이 우직하게 일을 하고 죽음 직전까지 성실히 교신한다. 화성에 투자되는 막대한 자본과 인력 그리고 로봇들의 노동력을 지켜보면서, 언젠가 머지 않은 미래에는 화성의 표면에도 물이 작용한 흔적들마다—바위마다 협곡마다 호수마다—무슨무슨 이름이 붙여지고, 지표면은 지구의 국경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가상의 선들로 분할될 것임을 생각해본다. 화성 탐사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주어진 임무보다 60배나 과로한 끝에 화성의 모래폭풍 속에서 순직했고 오퍼튜니티의 사체가 남은 자리에는 이제 ‘인내의 계곡(Perseverance Valley)’이라는 지명이 붙어 있다. 어쩌면 오퍼튜니티가 죽기 전에 이미 이름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죽어가며 다음의 유언을 남겼다. “이제 배터리가 없어요.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요...”

화성의 표면은 최소한의 진동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정지 상태에 더 가까울 것이다. 화성은 차갑고 메말라 있으며, 한때는 생명체가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이 있을 뿐 정말로 무언가가 그곳의 표면에서 뛰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탐사 로버가 직접 움직여야만 기록이 성립하고 그것의 뭉치가 무빙 이미지가 된다는 것은 사실 희한한 일이다. 다른 모든 무빙 이미지들처럼 <밤의 카르토그래피 I> 역시 정지된 프레임의 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것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영상이 화성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인 로버의 경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것들을 이어붙이면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한 번 보여준 곳은 다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말이다. 




박민하, <밤의 카르토그래피 I> 스틸 이미지, 영상설치, 무성, 12분 40초, 2020, 작가제공


정지된 것을 모아 지도를 제작하는 《밤의 카르토그래피》는 서교동 온수공간의  1층에서 전시되고 있다. 첫 번째 방에서는 로버의 촬영물들로 이루어진 무빙 이미지 <밤의 카르토그래피 I>이, 두 번째 방에서는 지구의 조종사들이 로버에 보낼 지시를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광경을 재연한 <밤 조종사들>이 영사되고 있다. 두 방을 등지고 있는 세 번째 방에서는 세 개의 유리 조명—아마도 쌍둥이 로버인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그리고 그들의 임무종료 이후 홀로 활동하고 있는 큐리오시티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이 모르스 코드로 변환된 빛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빛의 언어로 그들이 찾고 있는 것,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순서상으로는 첫 번째 방의 영상이 가장 마지막 공정에 해당하는 것일 테다. 

첫 번째 방에서 영사되고 있는 <밤의 카르토그래피 I>의 재료는 미국항공우주국에서 화성으로 쏘아올린 로버가 실제로 촬영한 것들이다. 로버들은 화성의 표면에서 감지되는 움직임이나 촬영할만한 것을 스스로 선별해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원격으로 하달되는 지시문에 따라 움직이면서 자신의 좌표 주변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기록하고 송출한다. 이렇게 기록된 밤은 이 ‘영화’의 프레임처럼 기능하며, 기록이 없는 밤은 완전한 어둠으로 대체된다. 블랙아웃이 되거나, 앞뒤의 기록들을 연결시키는 페이드 아웃 직후 혹은 페이드 인 직전의 상태로서 말이다. 대부분의 영상은 한 장의 사진을 확대 혹은 축소하거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 기록의 원본이 정지된 상태의 이미지, 즉 사진임을 짐작케 한다. 이 기록사진들 중에는 뿔 혹은 더듬이, 때로는 사람(이나 <토이 스토리>의 멀린)처럼 보이는 로버의 그림자가 포착된 것도 있다. 가끔은 로버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홈이 패여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기록이 없는 밤, 그러니까 ‘꿈’에는 로버가 없거나 어둠 속에 함축된다. <밤의 카르토그래피 I>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화성의 지도는 순조롭게 그려지고 무리 없이 증식될 것처럼 보인다.




박민하, <밤 조종사들> 스틸 이미지, 영상설치, 스테레오, 10분 48초, 2020, 작가제공


그러나 작품의 막바지에서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 화성 지표면의 기록이 아닌 시각적 ‘노이즈’가 움직임도 그림자도 없이 화면을 가득 채우다 암전되는 상태가 몇 번 반복된다. 급기야는 상하좌우로 밀리기 시작한다. 이미지가 밀려난 가장자리에는 반듯하게 재단된 검은 여백이 드러난다. <밤의 카르토그래피 I>은 이렇게 끝난다. 이미지의 바깥에 이미지가 없다는 것, 외화면이 없다는 것, 즉 이미지의 바깥이 어둠이며, 이것이 ‘네모’임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화성 탐사에 로버를 보내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 같은 것들이 아니라 코드화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번역하고 좌표화하고 이름 붙이는 것 자체, 즉 아직 코드화되지 않은 바깥에 대한 공포이다. 미처 매끄럽게 렌더링되지 못한 검은 네모는 파악할 수 없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지고 있다. 프레임 바깥의 검은 네모를 다시 프레임 속에 가두는 일은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세상의 끝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무리함과 불안정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주는 영원히 증식하는 세계다. 그러나 측정된 영역의 바깥을 측정 불가의 영역이 아닌 측정 예정의 공간으로 끝없이 자리매김하는 공간화에의 열망은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주의 팽창과 중단, 역행의 키를 쥔 암흑물질의 마지막 5퍼센트에 다같이 목매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밤’이라는 표현은 두 번 쓰인다. 로버의 움직임을 지구에서 시연(pre-enactment)하는 '밤 조종사들', 그리고 기록이 없는 날에 해당하는 암전 처리된 프레임을 포함한 '밤의 카르토그래피'. 그렇다면 로버가 지시문을 하달받아 움직이고 기록하는 시간을 ‘낮’, 그러니까 기록이 있는 시간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비록 전시 서문에서는 ‘낮과 밤’이 아닌 ‘기록이 있는 밤과 없는 밤’으로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코드화되지 않은 것은 밤이 되고 암전 처리되는 것이다. 

로버와의 낭만이란 어쩌면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오퍼튜니티를 살리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시도했다는 수십 차례의 재부팅은 심정지 환자에게 조치되는 심폐소생술 같은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코드를 입력하는 것 혹은 클릭 정도의 처치였을 것이고, 사인은 기계 결함이나 리소스 부족에 따른 문제였을 것이다. 오퍼튜니티의 유언은 매뉴얼에 따라 자동으로 구성되고 송출됐을 것이다. (눈물 흘리며 떠나보냈으면 인정상 탐사를 접든가 하지, 끊임없이 새로운 로버를 보내고, 일 시키고, 죽게 만들 거면서 그때마다 번번이 이럴 생각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항공우주국이 오퍼튜니티의 사망선고 직전 마지막으로 빌리 홀리데이의 “너를 만날 거야(I’ll be seeing you)”를 들려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짓는 와중에도, 문득 이 모든 것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버섯구름 속에서 울려퍼지던 “우리 다시 만나요(We’ll meet again)”보다도 희망없는 쇼처럼 들리는 것이다. 


※  2020년 1월 16일부터 온수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박민하의 개인전 «밤의 카르토그래피»는 2020년 2월 4일까지 이어진다. 문의는 070 7543 3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