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의 반(反)휴머니즘

CRITIQUE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휴머니즘 (2003)


임재철
(영화평론가, 이모션북스 대표)


(※ 이 글은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사히신문> 주최로 2003년 12월 11일과 12일 - 12월 12일은 오즈 야스지로의 생일이자 기일이기도 하다 - 양일 간 진행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의 한글본이다. 발표는 영어로 이루어졌고 행사 이후에는 일본어로 번역되어 국제심포지엄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OZU 2003」의 기록 国際シンポジウム 小津安二郎 生誕100年 「OZU 2003」の記録』(하스미 시게히코, 야마네 사다오, 요시다 기주 엮음, 2004, 아래 사진)에 수록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소개된 바 없어, 필자의 동의를 얻어 이곳에 한글 원문 - 영문 발제문 및 일본어 번역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 을 게재한다.)




오늘날 오즈 야스지로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인 동시에 일본영화에 관해 말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구로자와 아키라보다도 더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구에서 오즈를 뛰어난 감독으로 인지하게 되기까지는 대략 이삼십 년의 시간이 걸렸고, 또 그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강조점은 조금씩 변화해 왔었습니다. 구로사와나 미조구치에 비해 오즈가 서구에서 이해되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오즈를 얘기하는 데 있어 흔히 얘기되는 점입니다. 오즈가 이해되기가 쉽지 않은 감독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자주 이런 점이 언급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비단 일본 바깥에서 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오즈가 그다지 쉽게 받아들여지고 쉽게 이해된 감독은 아니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즈에 대한 일본 내부의 평가에 있어서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60년대 초에 일본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았던 몇몇 감독들, 즉 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그리고 시노다 마사히로 등의 이른바 ‘쇼치쿠 누벨바그’ 감독들은 오즈의 영화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은 오즈와 사적인 갈등관계에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오즈가 누리고 있는 작가로서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노다 마사히로의 경우엔 실제로 오즈 야스지로의 연출부에 있었던 적도 있고, 요시다 기주는 오즈의 연출부에 있었던 적은 없지만 그와 개인적인 교류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는 1963년 1월에 쇼치쿠 감독들의 신년축하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요시다 기주가 참석했던 그 자리엔 오즈 또한 자리해 있었습니다. 1962년 11월, 요시다는 오즈에 대한 비평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에서 요시다는 오즈의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이라는 작품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었습니다. 그 비판의 요지를 짧게 말씀드리면, 오즈와 같은 거장 감독이 이렇게까지 젊은 관객들에게 아부하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즈는 그 비판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시다는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신출내기에 불과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신년축하모임에서 오즈는 정말 그다운 방식으로 요시다에게 불만을 표현합니다. 요시다의 회고에 의하면 오즈는 젊은 감독이라 말석에 앉아 있던 그의 바로 앞 자리에 와서 앉은 다음 계속 그에게 술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불만은 전혀 얘기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후일 요시다는 그 사건이 자신이 영화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체험이 되었다고 밝힙니다. 1998년에 요시다는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영화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에피소드의 자세한 상황은 바로 그 책의 서문에 실려 있는 것이지요. 즉 쇼치쿠라고 하는 한 회사 내에 있어서도 오즈라고 하는 거장감독과 젊은 감독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쇼치쿠 누벨바그 감독들이 보기에 오즈의 영화는 그 당시 일본영화의 낡은 풍조, 즉 보수적이고 이른바 일본적인 것으로 회귀하는 풍조를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쇼치쿠 누벨바그 감독들은 오시마 나기사를 필두로 해서 차례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활발히 글을 써서 발표하는 감독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비평 또한 당대의 일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비평을 통해서 그들은 이전 세대의 낡은 흐름과 단절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그 낡은 흐름을 대표하는 감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풍조는 1970년대까지 일본 내의 오즈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즈 사후 그의 영화가 일본 내에서 자주 상영되지 못했던 것도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오즈의 영화를 아무런 선입견 없이 다시 들여다보면, 그의 영화는 요시다나 오시마의 영화보다 훨씬 더 ‘현대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당시에는 오즈의 영화는 낡은 것, 부정과 타도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그럼 그 당시의 젊은 감독들에게 오즈의 영화가 그토록 오해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오즈의 후기작의 경우에 매우 보수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적어도 이야기만 두고 볼 때에는 매우 전통적이라고 보이는 부분도 있죠.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점만 가지고 오즈의 영화를 낡은 영화라고 말한다는 건, 지금의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 됩니다. 

제 생각에 1960년대 당시의 젊은 감독들은 오즈의 영화가 지니고 있는 형식화에 대한 강한 지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토록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급진성이 그들에게 이해되지 못했던 것이죠. 그들은 오즈 영화를 그 소재나 내러티브 등에만 치중해 보았을 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의 유희적인 측면도 그저 소시민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오즈의 영화는 결국 보수적인 것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요시다 기주의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영화』 영문판 표지


먼저 오즈가 매우 형식화에 대한 지향이 강한 감독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요시다 기주는 오즈 야스지로의 반(反)영화에서 오즈가 영화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에게 숙제를 남기고 떠나간 감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책은 바로 그 숙제를 풀기 위한 의도로 씌어진 것이라는 거죠. 그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오즈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오즈와 같은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오즈는 만 60세로 세상을 떠났죠. 요시다는 이 책에서 오즈의 초기 영화들, 즉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의 영화들이 할리우드의 영화들을 철저하게 모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것이 너무 철저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라는 거죠. 거의 질릴 정도라고요. 이에 대해 요시다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요시다는 자신의 감독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단계에서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단계로 넘어오는 순간 하나의 원초적인 충격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관객의 입장에 있으면서 어두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에는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이 보는 이에게 상상력을 던져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독이 되어 카메라를 통해 하나의 피사체, 대상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그것이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즉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요시다 자신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매우 충격적인 것으로 다가왔었다고 합니다. 요시다는 이러한 최초의 충격이 오즈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오즈는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은 카메라맨이 그저 카메라를 돌리기만 해도 찍혀 나오는 것이기에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한 번이라도 돌려본 사람이라면 어떠한 관객이라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고 요시다는 말합니다. 이 또한 놀라운 경험이겠죠. 이러한 충격이 오즈라고 하는 감독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상처 내지는 절망감이 있었기 때문에 오즈는 미국영화를 철저하게 베끼기로 작정한 것은 아닐까, 요시다는 이러한 가설을 계속 전개해 나갑니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라든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경우에는 분명히 그 사람의 재능이나 감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데 반해, 영화의 경우에는 그러한 재능이 문제가 될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는 현실을 그대로 찍어내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생각에 대해 오즈는 처음부터 회의를 느꼈을 수도 있다고 요시다는 말합니다. 그래서 초기의 오즈영화는 그토록 철저하게 미국영화를 모방하게 된 것이라는 거죠.

오즈 영화를 보다보면 놀라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매우 수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오즈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에 의해 정의되는 감독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수동성에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왜 그는 페이드를 쓰지 않는가, 왜 그는 디졸브를 쓰지 않는가 등등. 물론 그런 식의 정의에 대해 하스미 시게히코와 같은 이들은 강하게 반발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소극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오즈를 이해하려 한 시도가 초래한 폐해가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오즈는 대상을 포착하는 데 있어 매우 수동적이며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감독은 아닌 것입니다. 오즈가 보여주는 이러한 수동성의 기원을 요시다는 앞에서 말씀드린 그 최초의 충격으로부터 찾고 있습니다.

오즈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시 그 시선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대화 중인 인물들의 숏/반응 숏에서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 다른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공허함’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누구의 것으로도 귀속되지 않는 시선들이 오즈의 영화에는 많이 등장합니다. 특정한 인물의 시선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객을 픽션 안에 배치하기 위해 조작된 카메라의 시선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시선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진 1]


<맥추>에는 노리코가 친구인 아야코의 집안이 운영하는 요정에 갔다가 회사의 상사인 사다케씨가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다케는 노리코에게 좋은 신랑감이 있다며 후보자의 사진을 주면서 꼭 집에 가서 얘기하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사다케가 있던 방을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텅빈 복도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트랙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텅빈 복도에서 쳐다보는 시선은 누구의 시선일까요. 이어지는 숏에서는 텅빈 가부키 극장 안에서 카메라가 움직입니다. (사진 1) 이것도 역시 누구의 시선이라고 지정할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즈의 통상적인 트랜지션 숏(transition shot)하고도 달라 보입니다.  

<동경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노부부가 동경에 오자 이들을 불편해하는 아들과 딸은 생각 끝에 그 둘을 아타미 온천에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결국 노부부는 온천에 갔다 너무 시끄러워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 딸인 시게는 집에서 열릴 저녁모임 이야기를 하며 난처해합니다. 노부부는 다시 잘 곳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되죠. 이때 노부부는 잘 곳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게 되는데 남편인 류 치슈가 “동경이란 참으로 큰 도시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맞아요. 이러다 우리 둘이 헤어지면 서로 못 찾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목에서 단 한 번도 동경의 전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물들은 계속 동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의 시선은 대도시 동경의 시선이라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 2]


또한 오즈의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대단히 부자연스럽게 동일 방향을 향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광경은 누구의 시선에 비친 것인지 지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조춘> 같은 영화에서는 출근 시간에 플랫폼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향해 전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진 2) 마치 누군가에 의해 지시라도 받은 듯이 말이죠. 이런 장면은 너무 우스꽝스러워 사실은 인간의 시선에 의해 관찰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건너편 승강장의 시선'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만큼 의인화하기 힘든 시선이라는 것이죠. 오즈의 형식적인 특징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필로 숏’(pillow shot)이라 불리는 트랜지션 숏도 사실은 이러한 비인칭적인 시선에 포함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카메라에 의한 시선이라고도 인물에 의한 시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오즈적 시선은 때로 기묘한 위치에 관객을 두게 됩니다. 우리는 영화 속으로 끌려들어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 밖으로 추방당하지도 않은 애매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알랭 베르갈라(Alain Bergala)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마치 “관객인 우리와 관계 없이 만들어지고 계속 존재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영화인 것입니다.   

제 생각엔 오즈가 이처럼 비인칭적이고 탈중심적인 시선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에겐 기본적으로 일종의 반(反)휴머니즘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그는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보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시선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분명 오즈에게는 형식적인 급진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형식적인 측면들은 오즈가 문예대작을 만드는 ‘예술가 감독’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당시 일본 내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오즈의 영화가 담고 있는 형식적인 힘은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도 인지되었으며 노엘 버치 같은 이에 의해서 굉장히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버치에 의해 오즈는 거의 서구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같은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오즈의 형식적인 힘이 과연 버치가 주장하는 대로의 정치적인 함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 와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1960년대 이후에 서구에서 등장했던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모더니즘의 편에 오즈를 위치시키려는 시도인데, 아무래도 무리가 있죠. 

좀 다른 관점에서 오즈가 갖고 있는 형식적인 급진성을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떠한 관점이 가능할까요? 1980년대 이후, 일본 내에서도 오즈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전통주의자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난 오즈가 처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소비사회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되면서 오즈의 영화가 재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오즈의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양상들이 정작 현실적으로 실현된 시기라고나 할까요? 확실히 오즈 영화를 특징짓는 반복과 패턴화의 양상은 소비사회의 ‘유희적 감각’에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오즈의 영화가 보여준 삶이 일본인들의 실제 삶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이해되지 못했던 오즈가 비로소 이해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때의 일본인들은 오즈의 영화가 옛날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게 되었던 겁니다. 

이때 오즈의 영화는 포스트모던한 소비사회에서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화가 됩니다. 물론 오즈가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미래의 관객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은 좀 억지겠죠. 사실은 인간의 관점을 신뢰하지 않고, 거기서 그것의 중심성을 박탈하는 오즈의 미의식 자체가 자연스럽게 포스트모더니즘과 통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렇다고 오즈가 포스트모던한 문화의 도래를 믿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즈가 이처럼 형식적인 조작에 집착한 것은 왜일까요?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의 항상 오즈 영화에 출연했고 그의 분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류 치슈가 자신의 영화인생을 회고한 글이 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영화촬영 당시 자꾸 NG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오즈는 류 치슈에게 “우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자네의 연기가 아니라 구도라네”라고 말했답니다. 오즈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죠. 연기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구요. 오즈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거의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즈의 형식화에 대한 강한 지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오즈는 자연, 특히 인간 이전의 자연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인간이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별 게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앞에서 말한 류 치슈의 일화는 바로 그러한 오즈의 관점과 통상적인 인간적 관점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당신의 연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도다, 왜냐하면 이 구도는 자연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선언이 오즈의 말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즈의 작업방식도 이런 자연의 사이클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그는 자신의 파트너인 노다 고고와 함께 봄에 시나리오를 완성한뒤 여름에 촬영에 들어가 가을에 개봉하는 식의 스케줄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한편을 거의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만들었던 것인데 이른바 ‘일년일작’(一年 一作)의 사이클이었죠. 그러고 보면 그의 영화 제목에 계절 이름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 자신은 영화의 제목이 영화의 의미를 규정하지 않을까를 걱정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말하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어쨌든 영화 안팎에서 그처럼 철저하게 계절 감각을 관철시켰다는 것은 역시 경이적이라 할 만합니다.

오즈가 형식의 모델을 자연의 시간 사이클에서 찾은 점을 말했습니다만 결국 그리하여 그의 영화는 시간의 흐름처럼, 소급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됩니다.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가정의 일상적인 삶은 마치 자연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우리들, 즉 관객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즈가 시간이 갈수록 더 높게 평가받게 되는 이유도 결국은 인간의 시선을 배제한 채 강력한 형식화의 지향을 일관한데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형식적인 집착이 철저하게 비역사적이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비역사적이란 정치적으로 반동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배적인 풍조에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사실은 비역사적이기 때문에 오즈는 고전이 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조구치와 구로자와가 잊혀져도 오즈가 살아남으리라고 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