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발활동 열한번째' 전경(서울시립미술관) ⓒ초단발활동
초단발활동(www.chodanbal.com)은 김대환, 김세진, 박보마, 임정수, 최윤, 함금엽, 황효덕 등 작가 7명의 활동명이다. 이들은 작년 4월 첫 활동을 시작한 이래 매월 익명의 장소에서 비공개적으로 저마다의 활동을 수행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지난 3월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한 번째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번 활동은 '문 닫은 시간의 미술관에서 어떤 관객을 마주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관객을 제한적으로 선별하여 이루어졌는데, 나는 김대환의 <뷰어와 어디언스와 키메라>의 리허설에 관객으로 참여하게 되어 운 좋게 그들의 열한 번째 활동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임정수는 직접 무언가를 하지 않고 12명의 퍼포머를 고용하여 각자에게 임무를 맡겼다. 퍼포머들은 큰 원을 따라 종이컵을 반복적으로 쌓기도 하고, 선을 따라 천천히 걷기도 하고, 계단 밑으로 크기가 다른 종이뭉치를 던지기도 했다. 황효덕 또한 퍼포머들을 고용하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닥을 기어가게 하거나 전시장을 배회하게 했다. 그 사이에 김세진은 머리에 파란 깃털을 꽂거나, 콩폭탄을 던져서 큰 소리를 내는가 하면, 2층으로 뛰어 올라가 입에 머금은 파란 물을 아래로 뱉어내기도 했다. 박보마는 전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투명한 스프레이를 벽이나 바닥 등에 뿌리기를 반복했다.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각자 정신없이 무언가를 행했고, 규칙 없이 장소를 꽉 채우며 움직였다.
황효덕, <시립 안 이불 속> ⓒ초단발활동
1층부터 3층까지의 홀을 자유롭게 오가며 퍼포머/작가들의 면면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중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그들의 몸과 행위를 인식하는 것, 체험의 감각이 급속도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관객의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으며, 이들 또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심지어 함금엽은 지하에서 혼자 활동을 진행하여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곳에서 보고 느낀다는 절차는 단지 관성적인 것일 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행동은 무엇을 향하고 있던 걸까? 임정수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내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현장을 열심히 찍었고, 박보마 또한 자신이 스프레이를 뿌린 직후 바로 그곳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김세진의 지인이라는 포토그래퍼는 마치 퍼포먼스처럼 보일 만큼 계속해서 구도를 찾아 배회했고, 최윤은 실시간으로 페이스북 중계를 시도했다. 김대환은 ‘(눈을 가리게 한) 청중’ 과 ‘(귀를 막고 뒤돌아 앉아 거울로만 무언가를 보게 만든) 관객’을 앉혀놓고 고프로(GoPro) 카메라를 머리에 쓴 키메라, 아이폰을 셀카봉에 매단 키메라에게 이리저리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함금엽이 공익근무복장을 하고 마주했던 것은 카메라 한 대 뿐이었(다고 한)다.
초단발은 관객, 무대, 심지어 자신의 행위에조차 무관심했고, 카메라를 들여와 다른 시공간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게서 지속적으로 물리적 장소에 대한 감각을 빼앗아갔다. 현장감을 느끼고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결국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유는 초단발의 모든 행위가 사실 전혀 다른 차원의 (비)장소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장소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상의 (비틀린) 텍스트―공간을 경유해 드러나는, 재현의 체계를 교란시키는 유동적 이미지의 (비)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표상하는 정주된 장소에 반하는 움직임으로서의 (비)장소이다. 초단발(의 활동)은 사실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은 퍼포먼스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개의 (비)장소로 향하는 벡터가 서로 간섭하는 한편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움직임'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 움직임은 과연 무엇을 수행하는가? 여러 대답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열한 번째 활동이 「서울바벨」전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 글에서는 물리적 장소에 개입/반대하는 움직임에 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싶다.
팀 그리핀(Tim Griffin)은 지난 2011년 『옥토버 October』 135호에 기고한 「압축 Compression」에서 장소(site)에 개입하는 최근의 예술적 작업/실천의 방식에 대해 서술한다. 그에게 있어서 ‘압축 알고리듬’은 jpeg, tiff와 같은 디지털 이미지의 변환과정을 지시하는 동시에, 외양적으로는 온전하지만 그곳과 연관된 정보나 역사적 기억이 상실된 채 드러나는 결과물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특정한 역사적 정보를 지닌 장소가 예술이라는 무대 위에서 전유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소의 현현이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만, 이 조건은 충족시켜야 할 질문으로, 언제나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로 남는다. 도달하지 못하고 완결 짓지 못할 결론을 향한 질문. 지시를 위한 레퍼런스가 아니라 좌표설정을 위한 주변부의 탐색.
미술관이 기억에 관여하는 일이 수행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성이 성립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탐색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그 질문과 탐색이 역사적인 사실/정보를 복구하는 재현의 서사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복구된 이미지는 공간과 그에 대한 감정 이외의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특정한 장소가 가능한가, 그리고 어떻게 장소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는 ‘동시대성’을 담론적 차원에서 시간의 다중적 공존상태로 볼 것을 제안하는 클레어 비숍의 주장과도 연관이 된다.("Being Contemporary", PAJ : A Journal of Performance Art 100, 2012). 다중적이라는 말이 언뜻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로 읽힐 수도 있지만 이 용어는 현재가 가능한 조건을 상정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동시대성이란 현재 시점에서 여러 시간성이 가시적으로 포착되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동시대성은 지연된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유효한 가능성을 드러낼 때 획득되는 것이다. 그 드러남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색하는 작업을 실천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윤리에 대한 질문을 재설정하고 나아가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대성을 결여할 때, 즉 조건에 대한 질문을 방기할 때, 기억은 사라지고 예술의 장면은 하나의 표면적 이미지로 압축된다.
바꿔 말하면 장소가 그저 표면적 이미지(혹은 명시적 상태)로 압축될 때 역사성은 사라진다. 장소는 있지만 장소성이 사라진 미술관에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관객의 체험, 경험, 참여라는 가벼운 말로 책임을 방기하는 큐레토리얼이다. 전시가 보여주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때, 전시장 안에서 관객은 저마다의 삶의 맥락 위에서 감상할 뿐 래디컬한 이해는 불가능해진다. 「서울바벨」전에 참여했던 개별 신생공간들이 제 몸을 보여주고 자신을 스스로 점검하는 고민을 통해 앞으로의 길을 상상했으리라는 것은 그간의 열기와 상황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결국은 제도에 의해 성급하게 오브제로 정리되어 버렸다는 점은 쓰라린 일이기도 하다. 「서울바벨」 전시장 어디를 둘러봐도 제도는 장면만을 보여주었을 뿐 그 어떤 감각을 생산하고 직조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단서는 얻을 수 없었다.
김대환, <뷰어와 어디언스와 키메라 Viewer wa Audience wa chimera> ⓒ초단발활동
무덤(mausoleum)과도 같은 바로 그 공간에서, 초단발활동은 장소와 결별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그들에 대한 몰이해에 반격을 가했다. 7명의 작가들은 1층에서 3층까지의 넓은 홀을 점유하면서도 아무 것도 무대화하지 않았으며 또 무대화해 바라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좌절시켰다. 그렇게 스스로를 오브제로 만들지 않으며 공간에서 빠져 나가는 감각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들의 육화된 행동은 표면적으로 압축된 전시공간이 상실한 무언가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들은 두 시간 가량 활동을 지속하며 기력을 소모시켰고, 피로에 따른 긴장의 이완을 그대로 전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져가는 퍼포머들의 팔다리 근육과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는 예상치 못한 무거운 공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구성원들이 서로에게조차 합의되지 않은 행위들을 간섭시키는 동안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 공간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잔해처럼 보였다. 비서사적으로 구성된 각자의 행위를 모두 끝내고, 7명의 작가는 긴 흰색 천을 매개로 하나의 몸을 만들었다. 「서울바벨」의 전시장은 신생공간의 위치도, 작품의 모양새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조용했는데, 단지 여기저기 설치된 인터뷰 영상들만이 미약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초단발은 영상들 사이를 흐르듯 움직이며 최윤이 붙여 놓은 반짝반짝 빛나는 손바닥만한 색종이를 찾아 헤드랜턴으로 비추었다. 명시적인 사물/상태/장소에는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주변을 간접적으로 비추는 움직임만을 만들어 낸 그들은, 종국에는 흩어졌다.
무덤(mausoleum)과도 같은 바로 그 공간에서, 초단발활동은 장소와 결별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그들에 대한 몰이해에 반격을 가했다. 7명의 작가들은 1층에서 3층까지의 넓은 홀을 점유하면서도 아무 것도 무대화하지 않았으며 또 무대화해 바라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좌절시켰다. 그렇게 스스로를 오브제로 만들지 않으며 공간에서 빠져 나가는 감각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들의 육화된 행동은 표면적으로 압축된 전시공간이 상실한 무언가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들은 두 시간 가량 활동을 지속하며 기력을 소모시켰고, 피로에 따른 긴장의 이완을 그대로 전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져가는 퍼포머들의 팔다리 근육과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이는 예상치 못한 무거운 공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구성원들이 서로에게조차 합의되지 않은 행위들을 간섭시키는 동안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된 공간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잔해처럼 보였다. 비서사적으로 구성된 각자의 행위를 모두 끝내고, 7명의 작가는 긴 흰색 천을 매개로 하나의 몸을 만들었다. 「서울바벨」의 전시장은 신생공간의 위치도, 작품의 모양새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조용했는데, 단지 여기저기 설치된 인터뷰 영상들만이 미약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초단발은 영상들 사이를 흐르듯 움직이며 최윤이 붙여 놓은 반짝반짝 빛나는 손바닥만한 색종이를 찾아 헤드랜턴으로 비추었다. 명시적인 사물/상태/장소에는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주변을 간접적으로 비추는 움직임만을 만들어 낸 그들은, 종국에는 흩어졌다.
최윤, <불꺼진 미술관> ⓒ최윤
초단발의 움직임이 유효한 지점은 행동들의 형식적 미학이나 관람의 감각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비정치적 장소가 되어버린 미술관에서 역사를 구성하려는 의지와 무관한, 어떠한 실체도 지시하지 않는 행위들을 통해 끊임없이 (비)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초단발의 움직임은 큐레토리얼이 제거해 버린 서사를 회복시켰다. 물론 이 서사는 선형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를 무엇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휴양지 뷔위카다 섬에는 트로츠키가 유배되어 살던 집의 잔해가 정원의 무성한 식물에 둘러싸여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트로츠키는 1929년 이곳에 처음 도착하여 그의 자서전인 『나의 생애』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도래할 프롤레타리아의 미래를 기대하며 세상을 향해 정열적으로 글을 썼다. 오르한 파묵의 안내를 받아 이 집을 방문한 캐롤린-크리스토프 바카르기예프는 그곳에 어떠한 표지판도, 어떠한 정보도 쓰여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얼마 후 바카르기예프는 다큐멘터리 <시티즌포>(2014)를 보게 되었는데, 외딴 섬 익명의 집과 홍콩의 호텔 방이 한데 겹쳐지며 당대의 광장(agora)은 더 이상 열린 공공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 광장은, 비록 닫혀 있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장소라 하더라도 올바르고 적절한 방식으로 타인을 연결시킬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녀는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해 <SALTWATER: A Theory of Thought Forms> 라는 제목으로 제14회 이스탄불비엔날레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스탄불 전역을 대상으로 곳곳의 역사적 장소와 (창고, 차고와 같은) 비역사적 장소에 (대부분 시각적으로는 밍밍한) 지적/예술적 결과물/질문을 틈입시켰다. 나는 일주일간 지도를 길잡이 삼아 그 장소들을 하나하나 더듬더듬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뚜렷한 설명도, 명확한 의미도 제시되어 있지 않아 뭐가 뭔지 도통 이해되질 않았는데,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방문했던 장소들이 준 경험이 독특한 방식으로 조합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연대기적 구성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건으로 장소를 파악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표상된 예술작품으로 대체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한 장소에 대한 인상과 그 사이로 틈입한 질문의 감각이 부유했고 이는 나의 기억이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자극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카르기예프는 전시 전체를 통해 ‘움직임’에 주목했던 것 같다. 행성, 해류, 인간, 동물, 화폐, (트로츠키와 같은) 추방, 시간, 지식 등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유형의 유산과 더불어 ‘나’라는 관람주체 또한 역사의 구성원칙에 포함된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주체와 대상이, 서술하는 자와 서술되는 자가 구별되지 않는 움직임의 뒤섞임은 언뜻 역사 자체와 동떨어지고 명확해 보이지 않지만, 그 감각은 실존적 사물들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망을 만들어 낸다. 이제 미술의 장소를 가능케 할 (돌파해야 할) 조건으로 움직임 자체를 상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형(形)의 정치가 가능하다면 움직임의 정치 또한 발명되어야 하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동시대적 질문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