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바르셀로나

REVIEW

루프 바르셀로나

≪프로듀스, 프로듀스, 프로듀스(드) Produce, Produce, Produce(d)≫






________________review (1)________________
송지현_큐레이터


루프 바르셀로나(Loop Barcelona)는 영상 예술을 홍보, 판매, 연구하기 위해 콜렉터인 에밀리오 알바레즈(Emilio Álvarez)와 카를로스 듀란(Carlos Durán)이 2003년 공동으로 설립하였고, 바르셀로나 도심의 한 호텔을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해 왔다. 페어(LOOP Fair)에서 시작한 이 행사는 2014년부터는 미술관에서의 전시(Exhibitions), 퍼포먼스와 스크리닝에 대해 말하는 액티비티(Activities), 도심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을 활용한 시티 스크린(City Screen)으로 구성된 루프 페스티벌(LOOP Festival)을 열며 공공성을 확보하였다. 또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콜렉터가 한데 모여 영상 예술과 관련된 담론들을 구체적으로 토론하는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 라운드 테이블로 구성된 루프 스터디즈(LOOP Studies)를 마련하여 작품의 유통뿐만 아니라 영상 예술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위한 플랫폼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루프 바로셀로나가 단순히 작품만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라 이를 이끄는 활동가들의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임을 알려 준다. 

2018년의 제16회 루프 바르셀로나는 ‘프로덕션’을 주제로 페스티벌은 ≪프로듀스, 프로듀스, 프로듀스(드) Produce, Produce, Produce(d)≫를, 루프 스터디즈는 ‘프로덕션은 어떠한가? Ⅱ: 무빙 이미지 프로덕션과 그 너머(What About Production? Ⅱ: On Moving Image Production and Beyond)’를 주제로 내세워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알마낙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열렸다. 그동안 나는 시간 기반 예술을 연구하며 전시와 스크리닝, 유통 플랫폼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었고, 현재는 갤러리에서 일을 하며 해외 미술 아트 페어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루프 바르셀로나는 익숙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했다. 행사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외형은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행사의 주최자, 발제자, 페어에 참여한 갤러리스트, 전시와 스크리닝을 기획한 큐레이터들의 태도는 여타의 페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규모가 큰 아트 페어에서는 영상 작품을 위한 별도의 섹션을 만들어 영화관 환경에서 선보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스위스에서 열린 아트 바젤에 필름 큐레이터로 참여한  막사 졸러(Maxa Zoller)는 페어에 참여한 갤러리들이 판매하고자 한 영상 작품 중 13점을 선택해 그녀의 관심사인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에 미디어의 복잡한 역할’이라는 주제를 반영하여 ‘필름(Film)’ 섹션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한 전시장에서 판매하는 다른 아트 마켓들과 달리, 영상 예술 작품만을 판매하는 루프 페어의 메인 부스에서는 갤러리들이 영상 작품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2015년 진행된 루프 바르셀로나에서는 '콜렉션'을 주제로 예술계, 법조계가 함께 모여 영상 예술만의 유통방식을 논의하였다. 또한 2016년부터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영상 작품 판매계약서 프로토콜을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 행사에서 비물질 예술이 어떻게 교환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페어에 참여한 42곳의 갤러리는 미술 제도에서 프린트된 작품을 판매하는 것과 유사하게 작품에 에디션을 부여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영상 작품만을 판매하는지, 작품을 프로젝션하는 장치들까지 포함한 인스톨레이션을 판매하는지가 약간씩 달랐다. 퍼포먼스와 프로세스 아트를 중점으로 다루는 런던 기반의 더 라이더 프로젝트(The RYDER Projects: https://theryderprojects.com)는 안드레아 갈바니(Andrea Galvani)의 <The end (Action #5)>를 영상을 재생하는 맥북과 그것이 놓인 좌대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조각적 작품처럼 선보였는데,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상은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공유(http://loop-barcelona.com/artist-video/the-end-action-5)했다. 페어에서 프로모션 한 43점의 작품 중 38점을 페어 기간 이후 웹사이트 비디오클루프(VIDEOCLOOP)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눈에 띄었는데, 이 사이트는 영상 예술을 아카이빙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상 작품에 에디션을 부여하는 방식은 비물질 예술을 다시 물신화하여 미술 제도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기에 보다 독특하고 특별한 판매 방식을 보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대규모 프로모션 행사인 만큼 현재 시장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시간 기반, 또는 렌즈-베이스 예술을 중점으로 선보인다는 미션을 내세우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갤러리들이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비서사적 형식으로 인류세를 다루고 있었다. 최근 국내 미술 현장에서 디지털이나 인터넷과 관련된 주제에 질문을 하는 현상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DVD is Dead>(Momu & No Es, 14분 4초, 2017)


8회에 걸쳐 열린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프로덕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기보다는 각각의 발제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프로덕션을 어떻게 정의하며 활동하고 있는지를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프로덕션에 대한 미술 제도와 영화 제도, 공공의 영역과 상업 영역의 온도차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첫 프로그램인 ‘시간을 커미션하기: 미술 기관과 무빙 이미지 프로덕션(Commissioning Time: Art Institutions and the Production of Moving Image)’에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는 다수의 비엔날레와 전시에 디렉터 및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커미션 작품을 제작했던 경험을 말하며 ‘생산’을 ‘협업’으로 지칭했다. 그는 회화, 조각등과 같은 작품은 혼자서도 작업할 수 있지만 영상 작품은 제작 과정에서 협업이 필수 불가결 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전시가 스펙터클화되며 만들어진 커미션 제도에서 작가가 기술자와 더불어 큐레이터와도 함께할 수 밖에 없는 ‘협업’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상업 영화에서 말하는 프로덕션과는 다른 프로덕션의 개념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막사 졸러는 ‘여하간 이것은 누구의 스크린인가? 아티스트 필름의 새로운 포맷(Whose Screen Is It Anyway? New Formats Of Artist’s Film)에서, 영상 매체가 오브리스트가 말한 협업의 과정 속에 있다면 과연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였다. 규모가 큰 전시에서 작품은 대체로 커미션 형태로 진행된다. 유명 큐레이터 또는 기관의 제안으로 작품 제작을 시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또 다른 투자자나 기술자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 과정은 스펙터클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때로는 작가가 의도한 방향대로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다. 더불어 제작 이후 다양한 조건이 맞물린 상황에서 과연 이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해 보아야 함을 시사하였다.

영국 런던의 FLAMIN(Film London Artists' Moving Image Network)의 대표 매기 엘리스(Maggie Ellis)와 작가 누르 아프샨 미즈라(Noor Afshan Mirza)와 브랫 버틀러(Brad Butler)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품 <흉터 The Scar>(2018, https://youtu.be/s-fCbVjl-sw)를 위해 199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FLAMIN이 영국예술위원회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걸어온 시간을 펼쳐놓았다. 예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연구, 작품 활동을 지지하고자 2013년 설립된 국제적 큐레이터 네트워크 카운슬(Council)의 공동 책임자인 산드라 테르즈만(Sandra Terdjman)과 미술 콜렉터 하로 쿰부시안(Haro Cumbusyan)은 ‘네트워크된 프로덕션: 아티스트 필름과 아티스트 비디오의 공동 창작에 대하여(Networked Production: On the Collaborative Creation Of Artists Films And Videos)’에서 카운슬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콜렉터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인 ‘네트워크된 프로덕션’을 소개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영화에서 말하는 제작 투자를 미술에서의 콜렉팅으로 전환한 개념, 즉 영상 작품을 제작 이전에 미리 구매하는 것에 기반한다. 일반적인 투자와 달리 작품을 구매하고 나면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각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발제자들은 각자의 태도와 입장에 따라 영상 예술을 무빙 이미지, 아티스트 필름, 비디오 아트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고 사용하였다. 여러 단어 속에서 큐레이터, 작가, 배급사, 콜렉터, 연구자들이 자신의 위치와 그 생태계를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며 영상 예술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공유하였다.


<Home Sweet Home>(Volkan Aslan, 6분 50초, 2017) 


페어가 열리는 호텔을 벗어나 미술관, 갤러리, 관광지, 길거리, 웹사이트 등의 장소에서는 몇몇 큐레이터들과 배급사가 기획한 페스티벌을 관람(http://loop-barcelona.com/exhibitions/#exhibitions 그리고 http://loop-barcelona.com/activities/#live)할 수 있었다. 나는 스크리닝과 전시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다녔다. 부수적인 기교를 덜어내고 기본적인 형식을 따르는 전시들을 보며 작품을 제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액티비티에서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는데, 관객들은 오직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었기에 심도 있는 대화의 장이 되었다. 전시라 칭하는 36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다 보지는 못하였지만, 메인 전시(http://loop-barcelona.com/activity/produir-produir-produit)를 포함하여 많은 전시가 미술관 전시의 방법론을 따르며 큐레이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 중 인비트윈 아트필름(In Between Art Film)이 수뇰 미술관(Fundació Suñol)에서 진행한 ≪Domestic and Urban Landscapes≫, 제네바현대미술재단(FMAC, Fonds d’art contemporain de la Ville de Genève)이 피카소미술관(Museu Picasso)에서 진행한 ≪Crossing Visions≫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두 전시는 모두 그들이 배급하는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화이트 큐브에서 스크린에 상영하는 단순한 방식을 따랐다. 작품은 미술관 운영 시간 동안 관람객이 자유롭게 오가며 관람할 수 있었다. 때때로 전시를 조직하다 보면 그 과정 중에 작품이나 기획 의도보다 다른 의도가 앞서게 될 때가 더러 있다. 행정적 절차를 먼저 따라야 한다거나 관람객 유치에 힘쓰게 되는 것 등 말이다. 이 경우 작품을 잘 보여주고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나야 한다는 근본적인 책임감이 흐려진, 중심이 부재한 전시를 마주하게 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몇몇 프로그램이 보여준 꾸밈 없는 기본적인 전시 방식은 새삼 전시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환기시켜주었다. 

루프 바르셀로나는 한 달에 걸쳐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본격적인 행사 기간의 오전 중에는 루프 스터디즈가, 오후에는 지하 라운지에서 루프 페어가 진행되었다. 이들이 펼쳐 놓은 시간은 행사를 보러 온 관람객과 관계자, 주최자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실제로 다수의 갤러리스트, 콜렉터, 주최자들이 최대한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만 하면 누구든지 이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도 놀라웠는데, 대체로 아트 페어는 관객층을 VIP, 베르니사주(Vernissage), 퍼블릭(Public)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기와 장소 범위를 나누어 운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영상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해지고 생각을 넓혀나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국내에서 영상예술만을 다룬다는 전시와 행사가 유난히 많이 열렸지만 사실은 이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굳이 그 키워드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들이 많았다. 현 상황이 진정 영상 예술을 위한 생태계일까? 현실 세계의 풀어나가야 할 많은 사건과 주제들이 있음에도 매체의 특수성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는 것이 유효한지 스스로가 의문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왜 계속해서 왜 이 질문들을 놓지 않는가 자문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영상 작품들과 함께한 일주일 동안 어렴풋하게나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릴 수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애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움직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는 끝까지 정의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원론적이지만 영상 예술은 영화와 미술 두 제도가 충돌, 교류하며 긴장감을 생성하고 때로는 서로를 횡단, 초월하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작, 상영 방식, 관람성은 끊임없이 뒤섞이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한 공간에 모여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는 영화의 공식도 깨지고 있다. 물성과 공간적 체험을 강조하던 장소성도 가상현실, 증강 현실의 발전으로 차츰 사라질지도 모른다. 단체성은 개별성으로 공간성은 비공간성으로 비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영상예술을 다루는 실천가는 끊임없이 이를 고찰하기 위해 씨름해야 하지만, 이를 하나로 정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위치에서 영상예술의 과거와 현재의 특이성을 관찰하며 함께 미래를 예측하는 태도가 유효하지 않을까 한다. 영상 예술의 존재 가치는 우리가 이 무한한 변용 속에서 고착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시공간과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탐구하며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다시 말해 영화적인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일 테다. 



________________review (2)________________
김신재_큐레이터


무빙 이미지를 위한 미팅 포인트를 표방하는 루프 바르셀로나는 페스티벌과 페어 모델이 결합한 독특한 플랫폼이다. 2003년에 처음 열린 이래 매년 바르셀로나 전역의 갤러리와 미술관 등과 협력해 전시, 상영, 라이브 퍼포먼스 등의 형태로 작업을 선보이고, 비디오 아트에 초점을 맞춘 페어를 개최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플랫폼을 위한 플랫폼’을 자처해온 루프는 상영 프로그램과 필름 마켓이 결합된 영화제들처럼 동시대 무빙 이미지를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지식과 작품의 생산, 그리고 마켓을 뒷받침하는 데에도 중점을 둔다. 2012년부터는 루프 스터디즈 섹션을 새로 마련해 토크, 전문가 미팅, 워크숍 등의 기획 프로그램도 강화했다. 루프 스터디즈는 프로덕션(2012)과 협업(2013), 관객 및 보급(2014), 콜렉션(2015)의 문제 같은 실질적 사안이나 비디오 아트와 시네마(2016), 비디오의 동시대적 고고학(2017)과 같은 쟁점을 아우르며 매 에디션마다 다층적인 논의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갤러리스트, 딜러, 프로듀서, 연구자, 콜렉터, 기관 및 아트센터, 재단 또는 법률 관계자 등 관련 생태계를 이루는 전문성을 가진 단체 및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견해와 아이디어, 공동 해결이 필요한 과제 등을 교류하고, 그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협업이나 진전된 시도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연구와 출판 부문을 더욱 강화해, 이탈리아의 무스출판사(Mousse Publishing)와 함께 2015년에 진행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엮은 『나에겐 언젠가 비디오 작업을 산 누군가를 아는 친구가 있어: 비디오 아트 수집에 대하여 I Have a Friend Who Knows Someone Who Bought a Video, Once: On Collecting Video Art』(2016)[1] 나 『예술가의 비디오 글쓰기 1970~1990 Video Writings by Artists 1970~1990』(2017) 등과 같은 총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무빙 이미지 프로덕션과 그 너머를 모색하기 위하여 ≪프로듀스, 프로듀스, 프로듀스(드) Produce, Produce, Produce(d)≫라는 타이틀을 건 2018년 루프 바르셀로나는 6년 만에 다시 '프로덕션은 어떠한가?’를 루프 스터디즈의 주제로 내세웠다. 무빙 이미지의 제작과 순환을 둘러싼 조건과 다양한 실천의 맥락을 더욱 정교하게 살피는 한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 프로덕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보다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 호텔 알마낙 바르셀로나에서 루프 페어가 열리는 동안 루프 스터디즈의 전문가 미팅과 워크숍, 토크 시리즈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프로덕션이라는 주제가 실질적 과정에 관한 문제인 만큼 학술적 토론보다는 각자의 경험이나 실천을 프로덕션의 맥락에서 공유하는 프리젠테이션과 토크가 주로 이어졌다. 토크 패널은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를 위한 기획 개발 프로그램과 프로덕션 및 펀딩 관련 트레이닝을 지원하는 기관인 FLAMIN(Film London Artists’ Moving Image Network), 아티스트 필름 프로덕션을 위한 런던의 아티스트런 프로젝트 스페이스 노웨어(no.w.here), 다학제적 작업에 특화된 로마 기반의 아티스트 필름 프로덕션인 인비트윈 아트필름(In Between Art Film), 뒤셀도르프와 베를린을 거점으로 하는 시간 기반 예술 전문 콜렉션인 율리아 슈토셰크 콜렉션(Julia Stoschek Collection) 등이 각자의 프로젝트와 활동을 소개했고, 카탈루냐 맥락에서의 콜렉팅과 중국 무빙 이미지 작업들의 경향 등도 다뤄졌다. 또 한편에서는 소규모 그룹으로 구성된 비공개 전문가 미팅과 소규모 워크숍들 또한 행동주의, 생태주의, 웹 시네마틱스, 상황적 실천, 디지털 기술, 정동 노동과 몸의 관계, 몽타주의 방법론, 오브제 기반 실천에 대한 지원, 공동 커미션을 둘러싼 문제, 수행적 실천의 커미션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FLAMIN의 제작 지원 과정과 그 여정에 관한 토크 


큐레이팅, 커미션, 프로덕션, 콜렉션

토크의 문을 연 것은 ‘시간을 커미션하기: 미술 기관과 무빙 이미지 프로덕션’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재단(Fondazione Sandretto Re Rebaudengo) 설립자이자 콜렉터인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의 대담이었다. 두 기관은 20년 동안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면서 주로 아티스트 필름이나 비디오의 커미션과 프로덕션 등을 통해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토크에서 두 사람은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폴 챈(Paul Chan), 와엘 샤키(Wael Shawky), 마리아나 심넷(Marianna Simnett) 등 전통적인 필름이나 비디오 프로덕션 사례부터 이안 쳉의 ‘밀사들(Emissaries)' 시리즈와 같은 게임 엔진이나 AI 기반의, 마치 생물처럼 가변적이고 끊임없이 생성되는 작업의 프로덕션을 아우르는 대화를 나눴다.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는 미술과 교육에 관한 뚜렷한 이상을 가진 드문 콜렉터로, 무빙 이미지에 주로 관심을 두고 카셀도큐멘타나 베니스비엔날레 등을 통해서도 신작 제작을 지원해왔다. 제작 지원작 중에는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의 <뉴 오션>(2001, 서펜타인 갤러리와 공동제작)과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과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장편 <지단: 21세기의 초상>(2006, 안나 레나 필름과 공동제작) 등이 있다. 재단은 2017년부터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협력하여 격년 단위로 시간 기반 매체 예술 작품을 공동 커미션하고 소장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은 레이철 로즈(Rachel Rose)의 비디오 설치 작품이었다. 최근 더욱 부상하고 있는 시간 기반 작업의 커미션과 창작에 있어 미술 기관의 역할이 어째서 중요한지, 어떻게 기존의 개별 주도 작업 모델이 점점 더 협력이 필요한 과제가 되어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콜렉터 혹은 후원자 모델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토크였다. 2015년 루프 토크에서 재단을 통해 영상 작품 프로덕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 네프켄스(Han Nefkens) 역시 완성된 작품의 수집과 소장만을 위한 콜렉션보다는 작가들의 아이디어에 사전 대응하는 공동 프로듀서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올해 토크에서도 콜렉터스페이스(Collectorspace)의 디렉터이자 콜렉터 하로 쿰부시안(Haro Cumbusyan)이 ‘실천으로서의 콜렉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 프로듀서로서 프로젝트의 과정에 참여하는 ‘프로듀서-렉터’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논했다.

베를린과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하여 시간 기반 예술의 전시, 보존, 복원 등에 집중해온 개인 콜렉션인 율리아 슈토셰크 콜렉션(Julia Stoschek Collection)은 ‘프로덕션 형태로서의 큐레이팅(Curating as a Form of Production)’의 맥락 안에서 시도하는 새 프로젝트 ‘수평적 현기증(horizontal vertigo)’을 소개했다. 최근 콜렉션에 합류한 호주 출신 큐레이터 리사 롱(Lisa Long)이 이끄는 이 1년짜리 프로젝트는 페미니즘, 퀴어, 그리고 탈식민적 비평의 관점이 스민 다학제적 시간 기반 실천들에 초점을 맞춘 기획으로, 전시, 퍼포먼스, 상영, 강연 및 낭독 등을 통해 콜렉션 역사상 처음으로 기존 콜렉션에 포함되지 않았던 작품과 함께 커미션과 프로덕션을 통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율리아 슈토셰크 콜렉션의 이러한 시도는 큐레이팅의 또 다른 층위로서 프로덕션을 제안하고, 시간 기반 매체에 특화된 개인 콜렉션 모델의 가능성을 새로이 설정하려는 탐색의 일환이기도 하다. 완성된 작품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콜렉션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의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하는 콜렉션으로의 이행은 워커아트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플랫폼: 콜렉션과 커미션(Platforms: Collection and Commissions)’ 프로젝트[2]를 떠올리게 했다. 


네트워크된 프로덕션에 대해 소개하는 산드라 테르즈만 (좌측은 하로 쿰부시안)


여러 시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프로젝트는 ‘네트워크된 프로덕션: 아티스트 필름과 아티스트 비디오의 공동 창작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토크에서 카운슬(Council)[3]의 공동 설립자 산드라 테르즈만(Sandra Terdjman)이 소개한 ‘구부러진 막대로 가늠하기(Measuring with a Bent Stick)’였다. 네트워크 제작의 사례로 소개된 ‘구부러진 막대로 가늠하기’는 카운슬의 큐레이토리얼 프로그램의 한 갈래로, 비과학적인 지식을 포함해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의 영향을 탐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증진하기 위하여 예술, 과학, 시민 사회의 사람과 지식을 모으려는 장기적인 조사 방법론에 기초하며, 충분한 연구와 진전이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를 위해 네트워크 프로덕션을 함께 조직해나간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의 예술 기관과 예술 재단, 비엔날레, 갤러리 및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시리즈로 영화를 제작할 예정으로, 에릭 보들레르(Eric Baudelaire)와 저우 타오(Zhou Tao) 등의 작가들이 대기과학, 지질학, 환경 연구, 경제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 영화 연구 등 서로 다른 지식을 보유한 다양한 분야의 지역 커뮤니티 및 학자들과 함께 협업한다. 이를테면 저우 타오의 신작의 경우, 광저우 비타민 크리에이티브 스페이스(Vitamin Creative Space)가 제작하고 시대미술관(Times Museum), 방글라데시 삼다니 예술재단(Samdani Art Foundation) 등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하고 있다. 산드라 테르즈만은 창작이라는 결과로 마무리되는 역동적 과정으로서의 프로덕션을 복합적이고,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주체들 간의 구조화된 상호작용으로 이해한다. 어떤 프로젝트에는 상당한 예산과 협력이 필요하고, 프로젝트를 위한 제작비는 때로 개별 커미셔너(미술관, 갤러리 또는 기타 예술기관)의 가능성을 초과하여 네트워크 제작이라는 보다 구조화된 방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카운슬은 구체적인 동기에 따라 반응하는 작가, 갤러리스트, 콜렉터 및 큐레이터 등이 모두 프로젝트의 잠재적 기여자가 될 수 있도록 이러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제작 구도를 꾸려나갈 예정이다. 특정 결과에 초점을 맞춘 커미션을 하기보다 프로덕션을 통해 네트워크를 브리징(bridging)하고 맥락을 함께 조직해나가는 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희소하거나 순환하거나, 공존하는 두 모델

올해 루프 참가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대담 중 하나는 카디스트 예술재단(Kadist Art Foundation)과 루프 바르셀로나의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 관한 토크 ‘비디오의 온라인 유통에 관하여(On the Online Circulation of Video)’였다. 올해 루프 바르셀로나의 예술감독 카롤리나 치우티(Carolina Ciuti)와 카디스트 예술재단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산드라 테르즈만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출시한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비디오클루프(VIDEOCLOOP)와 카디스트 비디오 라이브러리(Kadist Video Library)를 간략히 소개하고,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비디오 아트 전시 및 콜렉션 프로그램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MoMA의 전 큐레이터 바버라 런던(Babara London)과 작가 한스 옵 드 빅(Hans Op de Beeck)이 각각 큐레이터와 작가의 입장에서 견해를 덧붙였다.

아트마켓에서의 유통을 위해 고안된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루프 토크를 통해서도 빈번하게 다뤄져 왔다. 2015년 토크 ‘무빙 이미지를 에디션화 하기: 오래된 문제와 새로운 가능성들(Editioning the Moving Image: Old Problems and New Possibilities)’[4]에서 에리카 발섬은 에디션 모델의 한계와 대안을 역사적 차원에서 접근한 바 있다. 희소성를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은 복제와 재생산, 배포가 용이한 디지털 무빙 이미지의 매체 특성에 어긋나는 모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모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한 1960~70년대에 작가들은 활용이 용이하고 쉽게 복제, 배포할 수 있기 때문에 비디오 작업에 집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디오 아트는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을 통해 곧 미술 시장의 귀중품 경제에 동화되었다. 매체 및 기술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디지털 무빙 이미지를 다루는 많은 작가들은 이제 자신의 작품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우부웹(UbuWeb), 유튜브, 비메오 같은 플랫폼이나 개인 웹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한다. 그사이 물리적인 저장 매체는 자취를 감추고 갤러리 또한 비밀번호가 걸린 스트리밍 링크를 통해 감상용 복제본(viewing copy)을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영상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희소한 가치를 가진 사물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작품의 전시와 유통, 아카이빙에 대한 권리 일부를 양도‧허락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존의 에디션 모델은 디지털 무빙 이미지 본래의 속성인 배포 용이성과 접근성을 저해하며, 오히려 작품을 비가시화 한다. 무빙 이미지는 독점을 통해 가치가 보전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과 공유를 통해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발생시킨다. 발섬은 그 모순을 절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에디션 모델을 유지하되 연구 및 교육의 목적으로 감상용 복제본을 온라인에 개방하여 두 가지 모드를 나란히 운영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임을 언급했다. 에디션 모델에 뒤따르는 비판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미술관이 그러한 프로토콜을 따르고 있는 지금의 기후에서는 에디션 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특히 보존과 복원의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작업의 미래와 연결해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미술관의 수집 체제에서 무빙 이미지의 소장과 보존은 여전히 에디션 모델의 모드에 맞춰져 있다.

비디오클루프와 KVL은 전 세계 어디서든 관객들이 자유롭게 접속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각자의 콜렉션에 포함된 작품들의 감상용 복제본을 개방했다. 이를 통해 무빙 이미지의 이동성과 접근성에 대한 기존의 인위적 제약, 그리고 희소성과 작가적 통제에 대한 오랜 강박을 약화시키고, 공공 라이브러리로서 작품에의 접근성을 열어 두며 연구나 교육 자원으로의 활용을 통한 가치의 재창출을 도모한다. 비디오클루프를 통해 기존 루프 에디션에 참여했던 갤러리 출품작들을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하면서, 각각의 작품은 여전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동시에 공적 자원으로서의 이중의 위상을 유지한다. 이는 EAI(Electronic Art Intermix)의 배급, 이플럭스(e-flux) 비디오 대여, 럭스플레이어(LuxPlayer)의 VOD(Video On Demand) 서비스, 브이드롬(Vdrome)의 온라인 큐레이팅 모델과는 또 다른 국면의 접근이다. 이미지의 가치는 어떻게 높아지는지, 온라인에 비디오가 공개된 동시에 갤러리에서 판매할 경우 또 어떻게 될지, 온라인으로 비디오를 관람할 때 가장 좋은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구체적 예시를 기반으로 다시 던져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테르즈만과 치우티는 KVL과 비디오클룹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관련 동의를 얻는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테르즈만에 따르면, 카디스트 콜렉션에 포함된 작가 모두 대체로 흔쾌히 동의했지만, 일부는 자신의 작업이 온라인 관람에 적합하지 않다거나 갤러리 및 여타 기관과의 계약 문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기 곤란한 작업의 내용, 작업의 가치 저해 등을 이유로 거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루프 바르셀로나 역시 루프 페어에 참여하는 작가와 갤러리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했는데, 작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갤러리들의 경우 온라인으로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이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에 상반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도와 확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루프 바르셀로나가 페어를 통해 비디오와 필름의 거래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다른 네트워크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율해 온 덕분이다. 전통적 갤러리와 콜렉터들은 여전히 비디오 작업의 소장 가치에 의심을 품거나 환금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여전히 몇몇 작가들의 작품 외에는 2차 시장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투자 가치 역시 불확실하다. 그런 와중에 루프 바르셀로나는 여러 갤러리와 콜렉터들의 요청에 부응해, 투명한 거래를 위한 프로토콜 개발에 힘써왔다.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들과 함께 비디오의 작품들의 취득과 거래에 관련된 협약 마련을 위하여 연구‧협업했다. 2013년에는 저작권 전문 변호사에게 의뢰해 여러 작가, 에이전시, 배급사, 콜렉터, 프로덕션 회사, 예술협회 등과 함께 협약 문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논의‧수정해 왔으며, 협약서의 프로토콜 베타 버전을 자유롭게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웹페이지에 오픈 소스로 공개했다. 무빙 이미지의 특수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법적 문제, 저작권 규정에의 적용, 협약에 포함되어야 할 여타 조항 등을 다룬 보고서 역시 참고할 수 있도록 함께 게재했다. 루프에 따르면, 이는 구입한 이가 작업을 즐기고 또 필요한 방식으로 그 이용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작업에서의 영속성이 구매자가 갖게 되는 기기의 내구성에 좌우되지 않도록 구매자에게 법적 보장을 제공하는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루프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루프는 무빙 이미지 작품 판매를 위한 프로토콜과 함께 비디오클루프 서비스를 운영함으로써 실제로 온‧오프라인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루프 프로토콜 베타 버전 이미지


촘촘한 연결, 정교한 갱신

2015년 루프 스터디즈는 미술계 내부의 행위자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재고하며 ‘비디오 아트 수집은 어떠한가?(What about Collecting Video Art?)’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살폈다. 비디오 아트에 대한 전통적, 역사적, 미학적 분석은 주로 생산, 창작, 매개 및 수용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루프는 이러한 관점이 대개 콜렉터의 역할과 수집이라는 행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다양한 층위의 접근을 통해 콜렉터와 수집에 대해 재정의하고자 했다. 초기 비디오 아트와 아방가르드 영화는 대중 매체나 영화,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미학적 관습과 제도적 장치를 거부했다. 비디오나 필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상업화와 물신화를 거부하며 직접 자금을 조달하고 작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경로를 모색했다. 그러한 유산은 작품을 매매나 유통을 위한 상품으로 규격화하기보다는 인터넷상의 여타 정보나 밈(meme)처럼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이후 세대 작가들에게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한 작품들 역시 이내 제도나 마켓에 진입하며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비엔날레 등을 통해 전시되거나 소장되고 있지만, 특히 국내에서는 비디오 아트 전문 콜렉터나 마켓을 상정하거나 탐색해 나간다는 것이 유니콘을 찾는 일만큼이나 허황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디오와 필름을 리미티드 에디션 형태로 판매하고 소장하는 전통적인 유통 모델이나 비-오브제 기반 예술에 관한 개인 수집 사례 등을 투명하게 경험하거나 접할 기회가 매우 드문 탓이다.

전시나 프로모션만이 아니라 무빙 이미지를 둘러싼 다양한 실천을 매개하고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루프 바르셀로나가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가시적이고 양적인 성과보다는 질적인 차원의 매핑과 방향 설정, 커뮤니티 조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공동의 의제를 조율하여 특정 기관이 나서서 시도하기 힘든 루프 프로토콜이나 비디오클루프 개발에 착수하고 리서치 커미션 등을 통해 실질적인 방법론 모색에 조력한다. 구체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응집시키는 구심점이자 미팅 포인트로서 제반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다. 비-오브제 기반 예술이라는 반경 안에서의 루프 바르셀로나가 축적해온 신뢰와 기여를 감지할 수 있었다. 프로덕션을 위해 영화나 공연 쪽 모델이나 시스템으로 이주하기보다는 기존 미술계 네트워크와 조건 안에서 ‘최적의 생산(optimal production)’이 가능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후원자나 콜렉터들의 실천을 조명하고, 제작, 유통, 매개, 수집 등의 단계를 각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구도로 재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창작이나 사회공헌활동 등을 후원하고 비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에 익숙한 관객들을 고려하면, 비-오브제 기반 예술에서 수집이라는 실천은 더욱 더 소유나 투자, 장식 등의 목적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과정과 연결될 수 있다. 콜렉터의 역할이나 개인 콜렉션의 맥락 및 방법론 역시 유연하게 변화하고 갱신될 수 있으며 공공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들을 조명한 것이 루프 스터디즈의 인상적인 점 중 하나였다. 2015년 토크와 이후 워크숍에도 참여하고 있는 런던의 델피나 재단(Delfina Foundation)은 2017년부터 콜렉터 레지던시를 통해 퍼포먼스나 무빙 이미지 같은 비-오브제 기반 예술의 콜렉팅 실천을 재맥락화하고 콜렉터와 콜렉션의 역할과 기능, 확장된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앞서 언급한 하로 쿰부시안은 2018년 델피나 재단의 콜렉터-인-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참여자였다.

유럽 내에서도 국가마다 세금 정책이나 공공 기금 제도, 후원 문화 등에 따라 프로덕션의 환경이나 조건은 서로 상이하다. 인비트윈 아트필름의 파올라 우골리니(Paola Ugolini)에 따르면,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를 위한 상당히 촘촘한 제도적 지원 제도가 존재하는 영국에서와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공공 기금을 통한 프로덕션 펀딩을 기대하기가 거의 힘들며 대부분 민간 지원을 통해 제작 관련 펀딩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상이한 조건 속에서 유럽 내 예술가 및 전문가, 기관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의 프로덕션과 배급을 보다 원활하게 하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춘 것이 온앤포 프로덕션앤디스트리뷰션(On & For Production and Distribution)이라는 프로젝트로, 영화제의 마켓 모델을 참조하되 무빙 이미지의 특수성에 맞추어 기획되었다. 2012년 루프 바르셀로나의 예술감독으로서 ‘아티스트 필름 피치(Artists’ Film Pitch)’ 세션을 기획한 바 있는 큐레이터 안나 마누벤(Anna Manubens)과 브뤼셀 기반의 작가 중심 프로덕션 및 배급 플랫폼 오귀스트 오츠(Auguste Orts)가 함께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해외 주요 아트페어 뿐만 아니라 국내 아트페어에서도 연계 세션을 통해 비디오 전문 콜렉터를 소개하거나 개인 콜렉션을 조명하고 있으며 루프 바르셀로나 외에도 프리즈 필름(Frieze Film) 등이 상영 프로그램 외에 어워드, 또는 커미션 형태로 신작 제작을 지원한다. 서울뉴미디어아트페스티벌(NeMaf)을 주최해온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은 2019년 첫 비디오 아트 페어를 개최할 계획을 밝히고, 지난해 프리뷰 버전인 비디오 쇼케이스 마켓을 시범적으로 연 바 있다.

루프 바르셀로나는 무빙 이미지의 생태계를 위해 그러한 장기적인 포럼과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상호작용을 통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델과 방법론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교섭과 협력,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환경과 달리 미술을 둘러싼 제도나 시장의 관행은 마치 완강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제작, 유통, 소장 과정에서 영상 작품은 때로 기존 관념과 관행, 제도의 조건과 첨예하게 대치하거나 그로부터 괴리되곤 한다. 그러나 제도와의 첨예한 조율 과정은 때로 기존 관념과 관행을 갱신해나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루프 바르셀로나와 같은 플랫폼이 현재 무빙 이미지 작업이 당면하는 곤경이나 과제들에 획기적인 돌파구나 혁신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숲과 벌판을 아무리 헤치고 다녀도 상상했던 유니콘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유니콘을 더듬어 찾는 동안 숲의 지형을 샅샅이 익히다 보면 어느새 숲은 중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1] 무빙 이미지의 국공립 미술관 도입부터 민간 렉션을 아우르며 수집에 관련한 역사적 궤적을 그려볼 수 있도록 큐레이터, 비평가, 렉터, 작가, 변호사, 배급 전문가 등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시간 기반 예술의 취득, 제작, 유통, 전시, 보존과 관련된 이슈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

[2] 이 프로젝트는 워커아트센터 렉션의 무빙 이미지 작업들을 12명의 국제적인 작가들의 새로운 커미션과 나란히 배치한다. 원래는 워커의 웹사이트에서 보는 용도로 고안되었으며 국제적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관객은 무빙 이미지 커미션 페이지를 방문하여 비디오를 보고, 비판적인 에세이를 읽으며, 갤러리와 미디어테크를 통해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3] 산드라 테르즈만과 그레고리 카스테라(Grégory Castéra)가 함께 설립한 카운슬은 작가와 프로젝트를 연구, 제작, 지원하는 예술 단체로, 이를 위해 작가, 연구자, 활동가들에게 새로운 작업을 의뢰하고, 전시, 워크숍, 대담, 출판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조사(Inquiries)’는 전시나 발표 그 자체보다는 현실이나 큐레이팅의 맥락을 새로이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 큐레이팅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며, 이 외에도 ‘어게인스트 네이처 저널(The Against Nature Journal)’이나 ‘무한한 귀(Infinite Ear)’ 등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4] I have a Friend Who Knows Someone Who Bought a Video, Once — On Collecting Video Art, edited by LOOP Barcelona, Milano: Mousse Publishing, 2016, pp.90-103. 


참고할 만한 웹사이트

루프 바르셀로나 공식 홈페이지
http://loop-barcelona.com
비디오클루프 
http://loop-barcelona.com/videocloop
Loop Protocol
https://loop-barcelona.com/download-the-loop-protocol-beta-version

2018년 루프 토크의 영상 기록은 아래 루프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이전 에디션의 영상 기록 역시 대부분 유튜브에 아카이브되어 있다.  
http://loop-barcelona.com/watch-the-loop-talks-2018/
https://www.youtube.com/user/LOOPvideoart

FLAMIN
http://flamin.filmlondon.org.uk
Kadist Video Library 
http://kvl.kadist.org 
Council
www.council.art
On & For Production and Distribution
http://onandforproduction.eu
Platforms: Collection & Commissions
https://walkerart.org/calendar/2018/platforms-collection-and-commis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