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망루: <공동정범>의 김일란, 이혁상 감독과의 대화

INTERVIEW

보이지 않는 망루
<공동정범>의 김일란, 이혁상 감독과의 대화


유운성 / 『오큘로』 공동발행인


2018년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꼬박 9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월 25일에 개봉되는 <공동정범>(2016)은 당시의 정황을 요약하는 다음과 같은 오프닝 자막으로 시작한다. “2007년 8월,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은 용산국제업무지구 특별계획구역 개발 방안을 확정 발표한다. 곧 강제 철거가 시작되었고 용산 지역 철거민들은 이주 대책과 보상을 요구하며 2009년 1월 19일, 한강로 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점거 농성을 시작한다. 망루 농성에는 용산 지역 철거민뿐만 아니라 전국 15개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들도 연대 참여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례적으로 농성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 강제 진압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다.” 6년 전 개봉되었던 <두 개의 문>(2011)에서 연분홍치마의 김일란과 홍지유는,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의 목소리 없이, 저널리스트, 활동가와 변호사, 경찰특공대원 등의 목소리를 비롯해 자료영상, 진술서, 신문보도와 재연영상 등을 치밀하게 조합해 ‘가상의 국민참여재판’ 법정과 같은 방식으로 용산참사에 대해 따져 물었다. <두 개의 문>의 속편 혹은 ‘스핀오프’로 알려진 <공동정범>에서 김일란과 이혁상은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참사 ‘이후’를 재구성한다. 비로소 여기서 우리는 9년 전 그 날 망루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공동정범> 언론시사가 있던 1월 15일, 시사회를 앞두고 있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을 동대문 메가박스 인근의 카페에서 만났다. 대담은 오전 10시 반부터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유운성 오늘은 영화 <공동정범>의 ‘외부’라 할 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려고 해요. 물론 그런 이야기를 아주 배제한다는 것은 힘들겠지만요.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이라든지, 촬영되었지만 실제 영화에는 사용되지 않은 영상이라든지, 그리고 오리지널 버전(133분)에는 있지만 개봉 버전(106분)에는 없는 장면 등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피하려고 합니다. 저는 2018년 1월 25일에 개봉될 이 영화를 지금 이 모습대로 보게 될 관객들의 입장에 서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모습대로의 영화가 제기하는 논점들에 초점을 맞춰 보고 싶어요.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은 다섯입니다. 2009년 1월 20일에 있었던 용산참사 당시의 자료영상(footage)이 보이고 나면, 각각의 인물을 우선 자료영상에 비친 모습으로 보여준 후에 이어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섯 인물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네 분의 경우에는 참사 직후에 현장에 있는 모습이나 체포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충연(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장) 씨의 경우는 좀 달라요. 하얀 천으로 싸여진 시신이 들것에 들려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리고는 시간이 꽤 경과한 후에 이충연 씨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서 보인 시신은 이충연 씨 아버님일 수도 있지만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이 부분을 볼 때는 ‘이충연 씨의 경우에는 참사 직후 현장에서 촬영된 자료영상이 없나?’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나중에 이충연 씨의 꿈 장면에 분명 현장에서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찍힌 자료영상이 삽입되어 있거든요. 이렇게 자료영상이 분명 있는데, 혹은 자료영상을 찾았는데, 도입부에 주요 인물 다섯을 제시할 때 이충연 씨의 경우만 참사 현장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일란 그건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인데요. 우리가 이충연 씨를 바라볼 때 이 분의 위치는 생존자이기도 하고 유가족이기도 하잖아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도 했고 본인은 불타고 있는 공간에서 살아나오기도 했고요. 유가족이면서 생존자라고 하는 충돌이 이충연 씨 본인에게도 갈등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런데 이충연 씨 본인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영화에 나오는 다른 철거민 분들도 그렇고, 이충연 씨를 볼 때 유가족이라는 데 무게를 정말 많이 두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네 분의 경우에는 생존자로서의 위치에 충실하게 보여주었다면 이충연 씨의 경우는 유가족으로서의 모습을 보다 강조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하얀 천에 싸여 들려나온 시신은 이상림 열사(이충연 씨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다른 시신들의 경우에는 망루에서 꺼낼 때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 시신의 경우는 건물 뒤편에서 칼라TV가 촬영할 때 포착이 된 것이거든요. 그 자료영상을 보여주고 나서 바로 이어 이충연 씨가 구속될 때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지금 심경이 어떠냐?’라는 질문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기자들의 질문은 늘 그렇거든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참사에서 살아나온 피해자로서의 위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충연 씨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 후에 아버님 묘소에서 참배하는 유가족으로서의 이충연 씨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고요. 이렇게 이충연이라는 사람의 감정적 위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체적으로 도입부는 이 다섯 인물들은 지금 이러한 상황이다, 라는 것을 전달하면서 7년의 시간을 압축하고 있죠.  

유운성 이충연 씨가 들것에 실려 참사현장에서 실려 나가는 자료영상이 분명 있는데도 도입부에 삽입하지 않은 게 궁금했던 이유는 또 있어요. 이충연 씨가 아버님 묘소에서 참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 바로 앞에 삽입된 참사현장의 자료영상들을 보다 보면 기자나 채증영상을 찍는 분들이 창문턱에 올라서서 건물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모습이 보여요. 만일 이 모습에 이어서, 영화 후반부 이충연 씨 꿈 장면에 삽입된, 들것에 실려 나가는 이충연 씨의 모습을 극부감(bird-eye view)으로 찍은 영상이 곧바로 이어졌다면 편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시선의 일치도 얻을 수 있거든요. 본인이 이른바 ‘극영화적인 편집’에 열광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 이혁상 감독이 이런 ‘유혹’을 피했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김일란 그러니까 이충연 씨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자료영상은 그 분의 감정적 위치를 유가족에서 생존자 가운데 한 명으로 극적으로 변동시키는 지점에서 쓴 거죠. 위치와 관련된 혼란은 저희의 혼란이기도 했고 이충연 씨 본인의 혼란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유가족과 생존자라는 위치요. 

유운성 도입부에 삽입된 자료영상들은 어느 정도는 다섯 인물의 기억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다른 네 인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당시에 이렇게 체포되었다고 하는 것을 이충연 씨의 경우 자신의 기억 안에서 판단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군요. 

김일란 실제로도 당시에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요.  

이혁상 도입부에서 이충연 씨가 실려 나가는 자료영상을 넣지 않은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는 이충연 씨에 대한 사실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해요. 망루 안에 아버지를 두고, 동지들을 두고 제일 먼저 뛰어 내렸다고 하는 것이요.  

유운성 관객들이 도입부를 보는 동안에는 곧바로 인지할 수는 없고 영화를 보면서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이지만 여하간 이충연이라는 인물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혁상 이충연 씨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어떻게 실려 나왔는지 잘 몰라요. 망루에서 떨어지긴 했는데 어느 방향으로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떨어진 다음에 어디에 있었기에 그렇게 살아남았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참사 직후에 이충연 씨의 행방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고요. 남일당 뒤쪽의 건물에서 남편이 어떻게 되었을 지 계속 지켜보고 계셨던 정영신 씨도 남편이 뛰어내렸다고는 하는데 어디로 뛰어내렸는지 몰랐고요. 당시 촬영한 영상들을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이지 참사 당시 촬영된 모든 영상들을 프레임 단위로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찾은 게 바로 그 자료영상이에요. 그 전에도 보기는 했지만 늘 지나쳤던, 스쳐 지나쳤던 영상이었는데 그 한 부분을 확대해서 보니까 이충연 씨가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실시간으로 보면 정말 짧아요. 1초나 2초도 안 되는 순간 쓱 지나가는 장면이에요. 그걸 찍으신 분은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분이었는데 다른 곳을 찍고 있다가 어디선가 들것이 나오니까 잠깐 카메라를 돌렸던 거죠. 그리고 바로 또 다른 데로 카메라를 돌리셨고요. 너무 작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이 중요한 인물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겠죠. 저희는 이충연 씨가 제일 먼저 뛰어내렸다고 했을 때 뛰어내린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이 영화의 이야기, 다른 분들의 증언과도 대조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요. 여하간 당시 촬영 영상에서 이충연 씨의 모습을 마침내 발견한 순간, 이것은 영화의 구성상 굉장히 결정적인 부분에서 사용되어야 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껴 뒀던 거죠, 사실…… 오프닝에 삽입된 다른 네 분의 과거 자료영상을 고려할 때 함께 삽입되기엔 충분한 길이도 아니었고요. 김일란 감독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그 순간을 이충연 씨의 어떤 악몽처럼 보여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김일란 자료영상에 대한 고민은 <두 개의 문>부터 해 왔어요. <두 개의 문 2>라는 제목으로 <공동정범>의 제작에 착수할 당시부터 자료영상을 <두 개의 문>과는 변별되는 다른 방식으로 다뤄 봐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두 개의 문>에서는 자료영상이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목격자의 시선, 일종의 재판 증거, 실증적인 자료로서 사용되었다면, <공동정범>에서는 자료영상이 악몽이라든가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관적으로도 사용되고 있죠. 사실 자료영상에 담긴 참사 당시의 광경은 정작 영화의 주인공들은 볼 수 없었던 각도에서 촬영된 것이거든요. 우리는 용산참사를 화면으로, 그러니까 카메라의 시선으로 봐 왔지만 정작 망루라는 현장에 있었던 분들에게는 그런 시선이 아주 낯선 것이거든요. 자신들이 망루 안에서 투쟁에 참여하고 있을 때와 바깥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촬영된 것을 볼 때의 감각의 간극이 너무 크기도 했고요. 이혁상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자료영상을 어떻게 하면 악몽과 같은 방식으로, 보다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인물들이 과거로 돌아가게끔 하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초기부터 했던 것 같아요.  

유운성 이충연 씨가 들것에 실려 가는 모습이 담긴 자료영상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누구라도 이 영상을 보다 보면 원래 다르게 찍힌 어떤 영상의 특정 부분을 이충연 씨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확대한 것이라는 점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찾은 자료영상을 샅샅이 살피고 확대해 보면서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세부들에 주목해 흥미로운 영화적 효과를 끌어내는 것은 켄 제이콥스나 구스타프 도이치의 실험영화나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익숙한 방식이죠. 

김일란 네, 맞아요.

유운성 보통은 전체(원본)와 부분(발견된 세부)을 오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공동정범>에서는 이충연 씨 자료영상을 원본에서 확대된 부분만 보여줄 뿐 원본 전체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혁상 일단 그 『오마이뉴스』 기자께서도 누군가가 들려 나오니까 롱숏(long shot)으로 상황을 찍고 있다가 카메라를 딱 아래로 내리시고 줌인(zoom in)을 들어가긴 하셨어요. 그런데 그 정도로 들어가 찍은 화면만으로는 이충연 씨라는 느낌이 잘 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적으로 조금 더 화면을 확대시켰던 것인데, 사실 원본과 확대한 영상의 차이는 시각적으로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았고 그래서 원본을 따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중요했던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시간적으로 늘리느냐, 어떤 느낌으로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었죠. 이후에 DI 작업을 하면서 색보정 기사님과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터에 그 분이 뭔가 아이디어를 주셨죠. 

유운성 그런데 그 부분이 착시 때문에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느낌을 주는 효과가 생기고 있죠. 정말이지 켄 제이콥스 영화에서처럼요. 

김일란, 이혁상 네, 그렇죠. 맞아요!

이혁상 그게 그렇게 구현이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프리미어 편집기에서 느린 재생 효과를 걸어서 시간만 늘려놓은 평평한 느낌의 영상이었죠. DI 작업을 하면서 색보정 기사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이런 느낌을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확실히 들것에 실려 가는 이충연 씨 자료영상은 그런 정서적인 효과가 훨씬 중요했던 것 같아요.   

김일란 저희가 자료영상을 보다 자유롭게 쓴 부분은 지석준 씨와 이충연 씨의 꿈 장면이에요. 사실 촬영할 때나 자료영상을 선별할 때 이 부분은 꿈 같이 표현되면 좋겠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참사 현장에서 촬영을 하고 계셨던 분들이 느꼈을 긴장이나 당혹스러움이 있을 거잖아요? 그런 긴장이나 당혹스러움이 지석준 씨나 이충연 씨가 느끼는 것과 최대한 맞아 떨어졌을 때 증폭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 장면은 이렇게 하자 저 장면은 저렇게 하자고 저와 이혁상 감독이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공동정범>의 인물들
: (위부터) 이충연, 천주석, 지석준, 김주환, 김창수


유운성 다시 도입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섯 인물들을 제시할 때 용산참사 당시 촬영된 자료영상 속의 모습과 현재 이분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병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김창수(성남 단대동 철거민) 씨는 전신주의 통신 설비를 보수하고 있는 모습이, 김주환(서울 신계동 철거민) 씨는 옥상에 있는 집 바깥에서 화초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 천주석(서울 상도4동 철거민) 씨는 어느 집 인테리어를 위한 철거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지석준(서울 순화동 철거민) 씨는 병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고 이충연 씨는 아버지 묘소에 참배하는 모습이 보이죠. 다섯 인물의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바로 이 모습들을 고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저 인물들의 현재 상황만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들의 행위를 통해 각각의 인간적 특성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유형론적인 방식인데, 인물에 서서히 접근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에서보다는 재빨리 등장인물을 관객에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는 극영화에서 취하는 방식이잖아요. 물론 극영화적인 방식을 취했다는 것 자체는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왜 이 행위들이어야 했냐는 겁니다. 

이혁상 말씀하신 것처럼 행위를 통해 암시되는 각 인물의 특성은 영화가 전개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도입부에 보여줄 행위를 선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런 거였어요. 참사 이후에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계신지, 혹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주목을 했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김창수 씨 같은 경우는 원래 통신 일을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참사 이후에도 그 일로 생계유지를 하고 계시는 거고요. 김주환 씨 같은 경우는 ‘화초 아저씨’라고 저희 둘이 부르는 별명이 있는데요. (웃음) 김주환 씨는 감독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정이 가는 분이에요. 그 분의 섬세한 부분들이 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매력을 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화초를 가꾸고 돌보는 모습을 꼭 앞부분에 대표적인 이미지로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 분을 팔로우하면서 갖고 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천주석 씨 같은 경우는 그게 인테리어 공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철거 현장이에요. 철거민이 철거하고 있는 거죠. 아마 어떤 재개발 지역이었던 것 같아요.    

유운성 인테리어 공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철거 현장에서 일하는 중이셨다고요?

김일란 아냐, 그건 인테리어 공사 하던 게 맞아.

이혁상 응, 그랬나? 이렇게 헷갈리네요. (웃음) 

김일란 그런데 이렇게 헷갈릴 수 있는 게 그 분이 철거 용역도 가시고 인테리어 용역도 가시거든요. 

이혁상 여하간 철거민이 철거를 한다는 이미지가……

김일란 묘했어요.

이혁상 저희들이 촬영을 하고 그분을 따라 다니면서도 굉장히 아이러니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이것 역시 저희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미지였어요. 이충연 씨의 경우, 그분의 일상이라고 한다면 호프집 레아(Rhea)를 운영하고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는 그런……

유운성 레아를 운영한다고 하는 건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기도 한데 김창수 씨나 천주석 씨의 경우와는 달리 이충연 씨는 아버님 묘소 참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 것은……

이혁상 묘소 참배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생존자와 유가족 사이에 있는 이충연 씨의 위치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심경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은 저희는 일종의 영화적 복선 같은 기능으로 생각했어요. 그건 실제로 이충연 씨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였거든요. 아버지나 망루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그냥 넘어가는, 혹은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거죠. 여하간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이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었고 그게 하나하나씩 뽑혀져 나온 것들이 오프닝이 되었죠.  

김일란 그분들이 하고 있는 일 자체보다는 저희가 그분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가장 정서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편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지석준 씨 하면 떠오르는 게 이런 거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기 위해!’ 이런 거요. 병원에서 그 분이 뭔가 먹고 있는 행위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먹는다! 지석준 씨가 병원에서 뭔가 먹고 있는 숏은 그분이 남일당에서 추락하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영상 다음에 붙고 있거든요. 어쨌건 먹는구나, 이런 모습, 김치 먹고 싹싹 비워먹는 이런 모습 너무 좋다고 이혁상 감독이 편집할 때 그러는 거예요. 이 숏을 꼭 써야 하겠다고요. (웃음) 김주환 씨 같은 경우에는, 혼자 투박한 손으로 요만한 화초를 만지는 그 느낌이 그분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였고요. 김창수 씨 같은 경우는 이 영화에서 언제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말을, 언어를 대신 써 준 사람이었거든요. 그 차분함, 그리고 냉정함이랄까. 혹은 성실함…… 가령 회의 같은 것을 할 때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어떤 선한 주인공의 전형 같은 모습이죠. 성실하고 꼼꼼한 모습이 너무 강해서 그런 마스터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보았어요. 

이혁상 김일란 감독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할리우드영화나 홍콩영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이죠. 그래서 어떤 장면을 고르거나 편집에서 붙일 때도 언어적으로 설명하거나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기보다는 이렇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어떤 목표를 지니고 있고 어떻게 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전에 서로 공유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장면을 보고 좋은 숏을 골라내고 편집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저희 둘 사이에 이른바 ‘리터러시’(literacy)가 있는 것 같아요.  

유운성 두 분이 말씀하신 대로 각각의 인물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도입부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아주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지는 않는데, 다섯 인물들의 현재 모습과 관련된 모티브들, 즉 전기, 철거, 옥상, 병원, 사망이라고 하는 것들이 결합되어서 전체적으로는 용산참사라고 하는 사건을 조합적으로 환기시키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과거의 자료영상에는 정말로 참사가 일어난 현장이 담겨 있다면 다섯 인물의 현재를 포착한 영상들은 한데 모여서 그 자체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망루를 환기시키게끔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현재의 망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영화가 좀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

김일란 그건 편집을 거꾸로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영화 중반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를 일단 편집하면서 영화 전체의 느낌을 잡은 다음에 오프닝을 편집했거든요. 

이혁상 도입부를 거의 마지막에 편집했었어요.

김일란 저희는 항상 오프닝을 마지막에 편집해요. 

유운성 이 사람들은 여전히 망루 안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데 꽤 효과적인 오프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함께 망루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따로 있는 거죠. 영화의 몽타주가 환기시키는 망루의 구조 안에요. 그런데 이처럼 현재에도 지속되는 망루의 구조를 환기시키게 된 것이 전적으로 각 인물들을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마스터 이미지들을 연결하다 보니 우연적으로 생긴 효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김일란 숏을 선택하거나 하는 것은 감각적이었을지 모르겠는데 오프닝의 역할에 대해서는 분명 계획이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이혁상 뭔가 소름이 돋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김일란 영화는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니까 관객들은 이 영화가 진행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관객들이 어느 위치에서 참사를 어떻게 떠올리고 감각하면서 봐 주기를 바라는 감독들의 마음이 분명 들어가 있죠. 전체를 거의 다 편집하고 나서 세부조정을 계속하더라도 이 영화에 어울리는 오프닝은 이래야 한다고 그리고는 있었죠. 

이혁상 이분들이 여전히 망루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콘셉트는 이 분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하는 내내 견지하고 있던 생각이에요. 영화 제작 초반에는 물론 이 분들을 따로따로 만났는데, 그분들에게 2009년 1월 20일은 여전히 때로는 신체적 반응을 유발하기도 하는 악몽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분들은 그 현장과 그 기억을 떠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희가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이분들이 모인 첫 번째 간담회 때였어요. 다 모였는데, 정말 거기는…… 타오르는 불만 없었다 뿐이지 망루였어요. 이 공간 자체가 망루다, 이 사람들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그 현장을 보면서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했던 것 같아요, 저희들도. 그래서 이분들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콘셉트는 사실 영화 전체에 관통하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였죠. 

김일란 트라우마라는 것이 자신이 굉장히 좋지 않은 경험을 했던 그 순간으로 자꾸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잖아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면서 회전하는 것이죠. 타임루프죠. 이건 은유가 아니라 실제의 감각이라고 해요. 그것을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까? <공동정범>의 인물들은 4년 만에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이들이 4년 동안 고립되어 있던 시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게 저희 둘에게 우선 필요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4년이나 흘렀다고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그분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게다가 이분들은 혼거방이 아니라 독거방들에 계셨거든요. 감옥에 있는 다른 분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혼자 지냈어요, 혼자. 그러다보니 독거방에 계시면서 계속 그 참변을 떠올리게 되었던 거죠. 그렇게 보낸 4년의 시간 동안 그들이 느낀 경험은 감옥 밖에 있는 우리가 참사를 이해하는 방식과는 너무 달랐어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분들은 망루 안에서 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말하고 보니 정말 끔찍하네요…… 

유운성 도입부가 지나고 나면 용산참사 진상규명 출소 철거민 환영문화제 모습이 보입니다. 사이자막으로는 “수감 4년 후인 2013년 1월 31일, 철거민들은 모두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는 정보가 주어지고요. 확인차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용산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후의 삶을 기록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정확히 언제부터인가요?  

김일란 정확하게 말하면 2013년 5월에 첫 촬영을 했었어요. 그때 우리가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고요.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그러니까 예전 용산참사 대책위원회에 계셨던 활동가 분들이 출소 철거민 분들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날에 대한 증언을 인터뷰로 기록해 둬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씀을 주셨어요. 출소하신 직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든가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는 등 약간 여유 있게 시간들을 보내신 다음에 5월부터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했죠. 그런데 언제부터 영화로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유운성 환영문화제 부분을 보면 김주환, 천주석, 이충연 씨 세 분의 모습은 보이는데, 지석준 씨 같은 경우는 몸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김창수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가요?

김일란 출소한 직후에 김창수 씨는 부인이 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문화제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어요. 

유운성 도입부, 그리고 환영문화제 등을 통해 약간의 정보를 준 이후에, <공동정범>은 ‘망루 4층으로’라는 소제목이 붙은 ‘챕터’로 넘어갑니다. 여기서는 그날 망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고 하는, 말하자면 진상규명이라고 하는, 용산참사에 대한 일반적 접근과 기대에 부응하는 진술들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할 법한 정보들이 제공되는 것이죠. 물론 이 영화에는 도중에 ‘전환’(turn)이 있어서 진상규명이라고 하는 흐름과는 다른 방향을 겨냥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다섯 인물들이 진술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고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역시 이 진술들은 이분들을 인터뷰한 내용 가운데 일부를 뽑아낸 것이잖아요? 도입부와 관련해 궁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날 망루와 관련된 진술들 가운데 왜 하필 이런 진술들을 골라냈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먼저 지석준 씨의 진술을 떠올려 보면 짐차에 실려 온 물건들 가운데 세녹스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진술은 영화 후반부의 ‘사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챕터에 나오는, 자기가 세녹스를 뿌렸다는 김주환 씨의 진술과 만나게 되죠. 김주환 씨의 진술은 참사 당시 망루 바깥으로 어쩌면 세녹스일지 모르는 액체가 뿌려지는 것을 포착한 자료영상과 병치되고 있고요. 물론 지석준 씨의 진술을 막 듣고 있는 동안에 이런 연상의 회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지석준 씨는 이충연 씨가 남일당 밖으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진술을 하고 이때 관련된 자료영상도 함께 보여집니다. 나중에 경찰은 화염병을 발화 원인으로 단정하기도 했죠. 그런가 하면 김창수 씨는 무단으로 전기를 끌어다 플러그 하나 만들어가지고 남일당 옥상에 가져다 놨다고 진술하죠. 그리고 김주환 씨는 자신이 망루에 낸 좁은 창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동정범>은 발화나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영화도 아니고 또 그런 목표를 가진 영화도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그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편집하시면서 이런 방식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특히, 지금 이 영화는 정권이 바뀌고 나서 개봉하게 되었지만 제작하실 당시에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요. 이런 방식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복선을 깔듯이 모호하게 단서를 흩뿌리는 식으로 한 것이었나요?

김일란 사실 그 의문은 용산참사 직후부터 진보진영을 괴롭혔던 것이죠. ‘이 화재가 정말 화염병 때문이면 어떡하지?’라고 하는 것이요. 법정에서는 화재의 원인이 화염병 때문이라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정되었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도덕적인 면에서, 운동의 명분이라는 면에서, 혹여 누군가를 상하게 한 원인이 ‘우리 쪽’에 있는 것이라면 어떡하지 하는 의문이요. 고의였던 실수였던 철거민 쪽이 원인 제공자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죠. 말씀하신 것도 그런 두려움과 관련된 것이잖아요? 그러다 생각한 것이 ‘만일 그러면 어떡하지?’ 하면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하면 뭐가 문제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유운성 그렇죠. 설령 발화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 철거민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용산참사와 관련해 정의를 주장하고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상규명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분들에게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면 좋겠다’고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정범>은 그 부분을 훅 건드리거든요. 그런데도 약간의 주저함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연상을 할 만한 단서는 던져주지만 그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듯한 의도적인 모호함이 있어 보여요.  

김일란 그 모호함이라는 것은……

이혁상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결국 그분들이 들려준 진술들 자체에 모호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의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고 삭제되고,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이런 상황에서 그분들의 증언들 가운데는 서로 부합하고 이건 정말 '팩트'구나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어떤 부분은 정말 엉뚱하고 맞지도 않고 서로 다르고 이런 것들이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어떤 주저함보다는 그분들의 증언 자체에 담긴 모호함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일란 더불어서 그분들과 인터뷰를 할 때 저희의 생각은 이랬어요. 그렇게 뭔가를 가지고 올라갔다 한들 이런 참사가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는 거예요. 세녹스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세녹스의 상당량은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전기를 끌어다 쓴 것도 그 정도 불법적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각오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고요. 편집하면서 그분들의 증언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부분들을 골라 삽입한 것은, 그런 행위를 하던 당시에 이런 참사가 일어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픈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혁상 이분들의 증언과 관련해 저희가 뭔가 쭉 밀고나가지 못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 사실 그건 <두 개의 문>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유운성 우리가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망루의 진실’이라는 것을 사법적 정의에 따라 물으면 모든 책임은 철거민 분들이 지는 게 당연해요. 저는 망루의 진실을 묻는다고 하는 것의 위험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이 아니라 망루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 그 구조로도 시선을 돌려야 하는 거죠. 하지만 분명 <공동정범>에는 망루의 진실과 관련해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망루 안에 계셨던 분들 입장에서는 망루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망루의 진실과는 별개로 그들을 괴롭게 하는 진실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건 사법적 진실과 관련된 것은 아니죠. 그걸 잘 보여주는 분이 지석준 씨 같은 분이잖아요.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었는데 결국 그 사람은 죽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이요.  

김일란 사법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과 사회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차이가 있잖아요. 그것이 일치되는 순간도 있지만 일치되기 어려울 때가 더 많고요. 지금 질문하신 그 부분 때문에 <두 개의 문>을 만들 때 김형태 변호사님께 정말 많은 질문을 했었어요. 자문도 많이 받고 의견도 많이 들었고요. 예를 들면 증거중심주의라는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O.J. 심슨 사건은 사법적 진실과 사회적 진실 사이의 차이가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인데, 그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같은 것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님이 정말 많이 이야기하셨어요. 용산참사가 반드시 진상규명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이 이렇게 결론이 내려진다고 했을 때 우리는 법에 대해 더 이상 신뢰를 할 수 없게 되는데요. 증거중심주의로만 따졌을 때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철거민들에게는 반드시 무죄가 나와야 옳다는 거예요. 사회적 진실과 상관없이, 우리 편과 저쪽 편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건 그냥 무죄여야 말이 된다는 거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화재 원인을 특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요.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김형태 변호사님께서는 화염병을 던진 것은 던졌다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야지 그걸 밝히는 일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던진 것은 사실이니까요. 화면으로도 다 찍혔고요. 이렇게 분명한 것까지 말하기를 주저하면 다른 진술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게 되는 거죠. 주저하지 말고 말해야 용산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을 돌파할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죠.    

이혁상 국민들이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더라도 그에 대해 여하간 국가는 그런 식으로 진압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두 개의 문> 때부터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문>을 만들 때는 화염병이 화면상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있었어요. 가능하면 덜 보이게 하려고 했죠. <두 개의 문> 당시의 그런 경험과, <공동정범>을 촬영하면서 저희가 겪은 변화, 이런 것 때문에 더 돌파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던 것 같고요. 김형태 변호사님 외에도 법률 자문을 해 주시는 변호사분과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는데, 화염병과 세녹스 때문에 화재가 난 것으로 재판이 결론이 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어떻게 다시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유운성 그런데 그 문제는 진보진영 쪽에서는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김일란 그렇죠. 그래서 중요했던 건 이런 문제로 일단 우리가 고민에 빠지는 일이 필요했다는 거예요. 그런 긴장을 우리 스스로가 겪어야 한다는 것을 <두 개의 문> 때 경험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영화를 보는 시민들은 그런 질문에 빠지는 것 자체를 도전받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두 개의 문> 때 알게 되었어요. 

유운성 <두 개의 문> 때도 그렇지만 <공동정범>과 관련해서도 이 영화의 형식 혹은 양식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극영화적 장치가 가미된 다큐멘터리라고들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일란 ‘극영화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상관없는데, 그런 표현을 들을 때 ‘그게 왜 극영화적이지?’라고 반문하게는 돼요. 이혁상 감독은 극영화를 하게 될 거니까 그런 표현을 들어도…… (웃음)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들은 촬영된 대상, 혹은 물질로부터 연출자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다큐멘터리가 그 물질성으로부터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각적인 실험과 모험들을 저희도 하는 것  뿐이에요. 

유운성 다큐멘터리인데 극영화적인 장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형식적으로 흥미롭다는 말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으로 문제적이라는 뜻도 담고 있을 때가 적지 않거든요.

김일란 <공동정범>에서 정말 중요했던 것은 감각의 리얼리티였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자료영상을 사용할 때도 실제적 증거로서보다는 이분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의 감각의 리얼리티와 관련해서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했거든요. 그래서 꿈 장면에서 사용하는 데도 제약을 두지 않았던 것인데 그런 것을 두고 ‘극영화적’이라고 부른다면 거기에 반발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좀 더 다른 용어로 불러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유운성 저도 한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제가 볼 때는 <공동정범>은 다큐멘터리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극영화라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요즘에 종종 이야기되는 에세이영화라거나 하이브리드영화로 생각되지도 않아요. 하지만 저는 기존의 양식 가운데 분명히 이 영화와 상응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은 일단 도큐먼트, 습득하거나 직접 찍은 기록된 자료들로 출발하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 일어난 일을 논쟁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죠. 그렇다면 이런 건 사실 문학에서는 아주 익숙한 양식이거든요. 바로 르포문학이죠. 아무래도 영화는 카메라 앞에 직접 있었던 사물과 사건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다루다 보니 언어라는 매개를 쓰는 문학적 양식과 관련된 르포문학을 떠올리지 못했던 건 아닌가 해요. 저는 사실이라는 것과 맺는 관계의 층위라는 점에서 보면 <공동정범>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같은 르포문학에 가깝다고 봅니다. 르포영화라는 용어는 좀 생소하기는 하지만요. 물론 경험과 증언들이 있지만 그것을 말씀하신 대로 감각적 리얼리티라는 것과 관련해 사건을 구성해 주장/논쟁(argument)을 만드는 거죠. 

김일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것의 대상 자체가 꼭 물리적으로 가시적인 영역만은 아니잖아요? 감정도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꿈이라는 것도 다큐멘터리의 표현 영역이 될 수 있죠. 그렇게 보면 다큐멘터리의 정의나 표현 영역을 너무 제한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말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껴야 하는 고통과 상실의 감각을 어떻게 표현할 거냐는 거죠. 지석준 씨나 이충연 씨의 꿈 장면에서, 자료영상을 그분들이 주무시는 모습 앞뒤에 붙이지 않았으면, 즉 자료영상이 독립적으로 나오는 구성이었으면 극영화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죠. 여기서 의미는 편집의 효과죠. 지석준 씨가 될 지, 이충연 씨가 될 지, 아니면 화초 아저씨인 김주환 씨가 될 지는 몰랐지만, 저희는 영화에 삽입된 자료영상들을 살필 때부터 이것이 재연(reenactment)이 아닌 방식으로 고통의 감각을 드러내는 요소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똑같은 자료영상인데 용산 사건 재판 당시에는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증거품이었다면 <두 개의 문>에서는 현장을 증언하는 목격자들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당시에 망루 안에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시각은 경험이 불가능한 것이었거든요. 그분들의 입장에서 불타는 망루를 바깥에서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요. 그러니까 그건 그분들에게는 꿈의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번에 저희는 재연 장면을 넣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자료영상의 쓰임을 조금 바꿔 보았을 뿐이에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극영화 같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편집상의 효과를 두고 하는 이야기인 것이죠.  

유운성 재연 장면은 없지만 연출상의 조정(modulation)은 확실히 있죠. 예를 들면 이충연 씨가 호프집 레아에 출근하는 장면에서 문을 열고 가게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카메라는 이미 가게 안에 들어와 있거든요. 

김일란 그런 숏들이 있죠, 있어요. 이충연 씨는 레아에 규칙적으로 출근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죠. 일상을 알고 있으니까 찍게 되었던 장면들이 있죠. 편집하는 내내 핵심으로 두었던 것은 이분들이 느끼는 감각을 최대한 표현한다는 것이었어요. 

이혁상 감각의 리얼리티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저희가 가지고 작업한 자료영상들은 모두가 망루 바깥에서 촬영된 것이고 실은 망루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혀 증거하지 못하는 영상들이에요. <두 개의 문> 때부터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그냥 관람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용산참사를 체험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감각의 리얼리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영상을 사실적으로 활용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망루 안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영화적 장치들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사운드가 결합이 되고, 재연 장면이 들어오게 되고, 그리고 여러 가지 CG나 텍스트를 통한 화면 효과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이게 다큐멘터리의 근본주의자들…… (웃음) 다큐멘터리의 순수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너무 극적으로 보이는 거고 심지어 ‘포르노 같다’는 이야기까지…… (웃음)  

김일란 연대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교감하는 과정인 거잖아요. 하지만 그들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다, 이건 될 수가 없는 거죠. 다만 그 고통은 어떤 강도인가, 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등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하면 그게 영화라는 것의 목표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가 이해한 바의 그 감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제약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유운성 이 영화의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되는 것은 ‘남은 자들’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챕터부터죠. 그런데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적인 단계들이 있더라고요. 외로움이라는 상황이 김주환 씨가 화초를 가꾸는 모습을 통해 암시되다가, 그분이 경찰서에 연행되고 하는 등의 상황을 통해 강조가 돼요. 얼마 후에 천주석 씨가 정말이지 직접적으로 “외로웠어요.”라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천주석 씨가 용산에서 함께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어찌어찌 만나게 되었다고 한 후에 이어지는 장면이 모임(용산참사연대구속자동지회)을 준비하는 천주석 씨의 집에서 찍은 것이죠. 그리고 다시 천주석 씨의 인터뷰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이분은 “…… 그걸[동지회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이충연이더라고.” 하는 말을 꺼냅니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전환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살아남은 이들 간의 논쟁을 보여줄 준비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무렵, 정말 이상한 장면이 이어지거든요. 구성상으로는 샛길로 빠진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죠. 어떤 부분인가 하면, 천주석 씨 집에서의 모임 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서 딸하고 통화를 하는 김창수 씨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구속되기 3일 전에 딸과 동물원에 간 일 때문에 딸이 아빠가 동물원에 다녀온 것으로 생각했다는 김창수 씨의 인터뷰도 삽입되어 있고요. 본격적인 전환을 준비하기 전에 이 부분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편으로 이 장면은 감독님들 입장에서는 그분이 모임 자리에서 잠시 빠져나올 때 그분을 따라갔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던 것이잖아요. 거기서 따라 나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을 것 같고요. 또 기왕에 찍은 영상을 나중에 편집할 때, 본격적으로 논쟁적인 방식의 편집을 구사하기 전에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일란 일단 김창수 씨는 언제나 두루두루 살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또 다른 철거민 분들에 비하면 이야기가 많은 분은 또 아니었어요. 한편으론 유일하게 접근이 좀 어려운 분이었어요. 집안이건 아내분과 관련해서건요. 반면 다른 분들은 다 오픈이었거든요. 언제든지 가서 촬영하고 가족 분들도 “아이, 쑥스러운데!” 하면서도 다들 협조적인 측면이 컸고요. 그런데 김창수 씨는 다른 분들에 비해 접근이 어려웠어요. 그만큼 고민도 많으셨고, 카메라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걱정도 많으셨고요. 카메라가 불러오는 효과들에 대한 것이었죠. 아내가 혹시나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아내의 암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이걸 하면 딸이 아빠가 하는 일을 이해하게 될까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까, 나중에 커서 딸이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아빠를 이해할까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까 등등이었죠. 최대한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진중하고 섬세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천주석 씨 집에서 저희가 촬영을 할 때 그분을 어떻게 따라 나가서 촬영했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요.  

유운성 카메라를 많이 가지고 가신 것도 아닐 텐데요. 아마 두 대였을 텐데요. 그런데 두 대가 같이 따라 나갔거든요. 

이혁상 김일란 감독이 하나 들고 다른 하나는 제가 들었죠. 

김일란 아! 포커스 안 맞은 게 제가 촬영한 거고, 포커스 잘 맞은 게 이혁상 감독이 촬영한 거예요. 둘 다 따라 나갔는데…… 제가 김창수 씨를 좀 더 가까이서 찍고 있었고 이혁상 감독은 좀 위에서 찍고 있었어요. 

이혁상 둘이 함께 김창수 씨를 따라 나간 이유는, 일단 다들 술이 많이 취하시기도 했고 파장 분위기였어요. 영화에서 보면 김창수 씨는 술이 별로 안 취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바로 김창수 씨에요. 그분의 캐릭터이기도 하죠. 그리고 저희는 오랫동안 이분들을 따라 다니며 촬영해 왔기 때문에, 이쯤에서 이분은 나가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 통화 장면이 중요했던 이유는, 초반부에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감지되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그분의 키워드였기 때문이죠. 그런 부분을 드러내는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는 계획은 계속 있었어요. 그런 순간이 있을 때는 가급적 기록을 해 놓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찍기는 찍었지만…… 살짝 아쉽게 되었죠. 약간 늦게 움직였거든요. 사실 이 통화 장면은 너무 쓰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어요. 김일란 감독이 찍은 촬영본이 포커스가 나갔는데도 김창수 씨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쓴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그 전까지는 천주석 씨가 외로움을 토로하고 동지회를 만들고 이충연 씨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과정이 보여지죠. 그 모임을 통해 천주석 씨는 자신의 의도가 결실을 맺었기 때문에 좋아하셨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임 자리에서 이충연 씨에 대한 엄청난 '뒷담화'들이 있었죠.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요. 이런 식의 패턴은 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지나고 나서 김창수 씨가 나와서 전화를 하는 모습은 저희에겐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구속된 것을 동물원에 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딸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거든요. 이분들과 다니다 보니 어떤 패턴들이 익숙해져서 예측해 찍고 편집에 넣은 것도 있겠지만, 실은 감정적인 부분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딸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김창수 씨가 느끼는 것도 천주석 씨가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김일란 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사실 그게 김창수 씨에게는 늘 어떤 불균형의 이유였어요. 진상규명도 하고 싶고, 어디 가서 무엇도 하고 싶은데,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 되는 거고요. 김창수 씨 말고도 다른 철거민 가족들 가운데 아빠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딸이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우도 있어요. 여하간 김창수 씨는 어떤 모임 같은 데 나갔을 때 늘 가족들한테 연락을 해요. 

유운성 그렇게 김창수 씨의 통화 장면을 찍은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찍은 것을 편집 과정에서 바로 이 자리에 넣는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요? 

김일란 시점을 이동해야 하는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운성 저는 이 통화 장면을 넣은 데에 어떤 주저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출자들이 갖고 있는 혼란, 어떤 딜레마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를 할 건데 지금 바로 그리 가고 싶지는 않다는 거죠. 

김일란 맞아요, 맞아요.

유운성 이미 영화는 외롭다고 하는 천주석 씨의 토로에 의해 전환이 되었고, 모임을 만드는 것을 이충연 씨가 방해했다고 하는 말도 나왔고, 그리고 천주석 씨의 집에서의 모임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것도 동지회 점퍼 디자인 회의를 하는 장면,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이충연 씨 때문에 사람들이 동지회 모임을 피하는 것 같다는 김창수 씨의 말 등이죠. 그리고 나서야 레아 오픈 준비 중인 이충연 씨와 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온 다음에 “저는 술 먹고 어영부영하는 거 싫어요!”라고 하는 이충연 씨의 모습이 나오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남은 자들’ 챕터의 여기까지는 완전히 논쟁 혹은 싸움으로 향하는 흐름을 따르고 있어요. 그런데 유독 김창수 씨의 통화 장면은 이 흐름에서 다른 곳으로 가서 잠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김일란 정확하게 보셨는데요. 중간 중간에 그렇게 머뭇머뭇하는 것은 사실 오리지널 버전에는 더 많아요. 이야기가 쭉 간다기보다는 인물들을 돌아서 가거나 하는 게 훨씬 더 많아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저희의 감정들이 남아 있는 장면들이죠. 어떤 인물에 머물렀다 가고 또 이 인물에 머물렀다 가고 그러는 거죠. 연분홍치마의 다큐멘터리에는 <두 개의 문>을 제외하고는 그런 이상한 장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는 종종 들었거든요. (웃음) ‘저 장면이 왜 있지?’ 이런 물음이요. <3×FTM>에서도 인물이 막 말을 하는데 이야기에 필요한 장면이 아닌데 왜 들어갔냐는 물음이 있었어요. 그런 건 효용성과 상관없이 둘러서 가는 장면인 거죠. 그런데 김창수 씨가 딸과 통화하는 장면의 경우에는 둘러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김창수라는 사람은 이처럼 두루두루 살피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그 다음에 이런 사람이 왜 이충연 씨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말하면 김창수 씨의 말에 더 신뢰를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통화 장면이 있어야 김창수 씨가 이충연 씨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을 할 때도 그 분이 느끼는 갈등이 느껴질 것 같았고요.   





유운성 사실 개인적으로 <공동정범>과 관련해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대체 이 영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물음은 무엇이냐는 것이죠. 진상규명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살아남은 이들의 감정적 불화라거나 <두 개의 문> 이후의 이야기라는 것도 홍보의 필요에서 언급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실 그것도 <공동정범>의 한복판에 있는 물음은 아닌 것 같아요. 아예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아니라는 거죠. 피해자 또한 내부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그 핵심적 물음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고요. 저는 이 영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물음이 무엇이냐고 할 때 그것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에게 공동체가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 의해 강요된 ‘공동’정범이 되는 식이 아닌 공동체 말이죠. 한편으로는 용산이라고 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적인 모임이 있어요. 여기서는 가끔 함께 술 마시면서 외로움을 달래 주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 하죠. 정치적인 대의를 생각하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도 없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저지른 비겁한 행위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커서 죽은 자들에 대한 빚을 어떻게든 공적으로 갚으려 하는 개인이 있죠. 이충연 씨가 바로 그 장본인이죠. 이 분한테는 사적인 모임, 공동체에 참여한다고 하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임무를 방기하는 일이 돼요. 지석준 씨도 이 점에서는 이충연 씨와 약간 비슷할 수는 있는데 입장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지석준 씨는 얼마간은 사적인 방식으로 죄책감의 변제가 가능한 분이거든요. 대의, 의의, 가치가 없는 사적이고 무용한 공동체는 사실 공적이고 정치적인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부분인데, 제가 요즘 느끼는 동시대적 삶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무용한 공동체의 구조적 불가능성입니다. 그런데 <공동정범>은 바로 이 쓸모없는, 무용한 모임 혹은 공동체라는 토픽을 건드리고 있어요. 이런 쓸모없는 모임이 대의를 내세우는 정치적이고 공적인 공동체 가운데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 그리고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같이 있죠. 이런 물음이 첫 좌담회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가 싶더니, 그 좌담회 장면 이후에는 이 물음이 사실상 방기돼요. 영화의 말미에 보면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사망 원인, 그리고 망루 화재 원인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았다.”는 사이자막이 주어지는데요. 이것은 분명 사실의 기술이지만, <공동정범>이 도중에 전환을 감행하면서 따라왔던 흐름에 걸맞은 결말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물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개봉 버전에서 끝까지 이 물음을 갖고 가는 게 힘들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이 점이 궁금합니다. 

김일란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이 난 것인데요. 살아오면서 제가 지니게 된 가치가 영화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저의 경우에는 연분홍치마라는 공동체가 너무 중요하거든요. 1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개인이 할 수 없었던, 개인일 때는 꿈꾸기만 했던 것들을 모임, 단체라는 곳에서는 실현 가능한 때가 있었어요. 이것을 유지하지 위해서 꽤 노력하고 있고요. 공동체를 통해서는 현재 뿐 아니라 미래를 상상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저를 믿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죠. 사실 그만두고 나간 사람도 있고 곧 그만둘 수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2017년에 촛불시위를 겪으면서 느낀 것도 있어요. <공동정범>을 찍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그런데 촛불과 상관없이 제가 인권 활동을 해 오면서 느낀 건 정말이지 한국 사회에는 공동체라는 것이 없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조기 축구회나 이런 것 말고요. 나를 지지해 주는 공동체, 내 삶의 가치를 지지해 주는 공동체, 이런 것들이 풀뿌리 운동의 기본인데 이런 공동체가 별로 없어요. ‘공동체 상영’이란 것을 다녀 봐도 그런 부분을 느끼기 힘들거든요. 페미니스트로서나 비혼으로서나 제가 지향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정서적인 생활 공동체는 너무 중요해요. 그런 게 <공동정범>의 인물들에게 은근히 투영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투영되면서 저들의 공동체를 해체하고 타인 뿐 아니라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폭력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바라보는 데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묻어난 게 아닌가 해요. 

이혁상 그런데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회의가 더 짙었던 것 같아요. 아까 언급하신 결말부의 자막, 천주석 씨가 두 번째 좌담회 자리를 떠나고 난 다음에 나오는 자막은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천주석 씨는 이후 인터뷰를 거부하고 촬영을 중단했다는 내용이에요. 개봉 버전에는 그 자막이 없죠. 그리고 개봉 버전에서 이명박이 등장하는 그 시점에 오리지널 버전에는 철거민들이 모두 참여한 동지회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막이 있거든요. 저는 아무래도 회의주의자라서…… (웃음) 그런 톤이 더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요. 어쨌건 이런 생각도 들어요. ‘공동정범’이라는 사법부의 판결 자체가 이들을 어쩔 수 없이 공동체로 묶어 버린 것이라는 것을 저희는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동체성이나 이런 것을 조금 더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도 했고요. 저는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 공동체성의 복원 같은 문제에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에게 더 주목했던 것 같아요.  

유운성 조금 달리 말하자면, 이충연 씨처럼 특별히 강한 죄책감을 갖는 개인이 생길 때, 공동체의 복원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게 이 영화가 제게 불러일으키는 물음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논쟁이 생기는 건 대립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양쪽 모두 설득력이 있거든요. 

이혁상 김일란 감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공동정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보는데 그게 공동체의 인간은 아닌 것 같아요. 각각의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작업을 진행했죠. 저 개인에게 있어서는 공동체라는 것, 이들을 묶고 있는 공동체, 철거민 공동체 이런 것에 대한 희망이나 이런 것들은 이 영화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저는 역시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김일란 사실 ‘공동체란 무엇인가?’보다는 ‘연대란 무엇인가?’가 더 강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차이가 연대를 가능하게 하잖아요? 연대라는 것은 차이가 있는 이들끼리 하는 것인데 이게 모순적인 게 연대가 가능하려면 한편으로는 동질성에 기반을 둬야 하거든요. 동질성에 기반을 둔 연대냐, 아니면 차이에 기반을 둔 연대냐가 늘 쟁점이기도 하죠. 동질성에 기반을 둘 때는 굉장히 폐쇄적이거나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요. 차이에 기반을 둔 연대는 확장성을 가지되 결속력이 우려되는 순간들이 생기잖아요. 그럼 연대란 무엇인가, 라고 물을 때…… 밀양의 할머니들도 ‘연대자’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이 연대자는 ‘당사자’이기도 하죠. <공동정범>의 경우 인물들 각각이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거든요. 내가 이 사안에 어떤 주체로서 연루되어 있고 이 사안을 어떤 주체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이 문제에서 용산의 ‘당사자’(이충연)와 ‘연대자’(천주석)가 갈리는 것이죠. 그래서 이분들이 스스로 화합한다고 하는 것은 ‘연대자’와 ‘당사자’ 사이의 주체적 갈등이 축소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죠. 저희가 영화 도중에 ‘전환’을 감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이충연 씨는 사회적으로 발언권도 있고 언론들도 이분에게만 주목하잖아요? 다른 분들도 용산 참사의 피해자이고 당사자인데 주목받지 못했죠. 어떻게 보면 이 사회 자체에 의해 이분들의 갈등이 촉발된 면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대자 분들 사이에서 ‘우리는 소외받았어’라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이고요. 처음에 <공동정범>의 주인공은 이충연 씨였지만 다른 네 분으로까지 확장된 것도 그 때문이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공동체 자체보다는 연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조금 더 의식했던 것 같아요. 분명 연대에 관한 물음을 더 의식했던 것 같은데 정서적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물음에 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씀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이혁상 공동체가 복원되고 재건되고 하는 부분은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저희는 이충연 씨라고 하는 사람을 계속 봐 왔고, 이충연 씨 스스로도 많이 성찰하고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들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결국 이 영화가 끝난 이후에 그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거든요. 특히나 이충연 씨의 몫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 영화는 그걸 요청하는 수준에서 딱 멈춰야 된다는 생각이 제겐 있었어요. 그걸 강요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 내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건 아니었고요. 그동안 연분홍치마의 다큐멘터리들은 영화 자체도 있지만 상영 활동을 통해서 더 많은 의미와 변화를 가져오는 데 힘을 쏟았어요. <공동정범> 역시 영화가 끝난 이후에 뭔가 시작되는 또 하나의 과정이지 않을까요? 

유운성 <공동정범>의 결말부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인 용산 참사 현장에서 개최된 추모제 장면, 김창수, 김주환, 지석준, 천주석 씨가 김석기 총선 출마 규탄 피켓을 들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김석기의 국회의원 당선을 알리는 자막, 갈등의 시작은 재판부터라고 말하는 이충연 씨의 인터뷰 등등이 이어지는데요. 이 결말부에서는 다섯 인물들이 함께 공동의 대의를 위해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이들을 공동체로 묶어버리는 방식으로 끝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가 중간에 ‘전환’을 감행한 이후에 보여준 흐름을 고려하면 이런 결말은 좀 성급한 봉합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김일란 말씀을 듣다가 생각해 본 것인데요. 이충연 씨는 이제 사회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사람이, 숨을 곳이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디 숨을 데가 없는 거죠. 이 분이 어느 순간 온전히 숨을 곳을 필요로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요. 그런데 숨을 곳이라는 게, 혹은 기댈 곳이라는 게 동지들밖에 없는 것도 사실인 거예요.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끝냈다면, 이번 개봉 버전에서는 저희의 바람으로 끝낸 것 같아요. 저희 감독들의 바람이자 이분들의 바람이기도 한데요. 이분들의 갈등이 실은 사회적으로 잊히고 고립되면서 더 증폭된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그런 갈등은 이분들 스스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도움이 필요하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결말은 연대를 요청하는 결말이지요. 결말에서 봉합되었다, 저희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분명히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그런 결말이 불러오는 요청과 기대의 효과는 선명해진다고도 보았어요. 그래서 ‘넣자!’고 결정했던 거죠.    

이혁상 아마 오리지널 버전과 개봉 버전의 가장 큰 차이가 엔딩일 거예요. 철거민들이 모두 참여한 동지회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자막이 빠지고, 이명박 영상이 새로 삽입되고, 이명박과 관련해 구성상 충돌을 일으키게끔 동지회 사람들의 활동 등을 집어넣게 되었는데요.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저희 둘의 영화적인 욕심이 더 컸다고도 할 수 있고, 관객의 시선보다는 국가폭력을 가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을 더 염두에 둔 측면이 있었어요. 그 결과 국가폭력의 당사자들을 향해 너희들 때문에 이들은 아직도 모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결말이 되었죠.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국가폭력을 향해 미칠 효과를 고려했던 것이죠. 그러다 개봉 버전을 작업하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미칠 효과를 고려하게 되었어요. 연분홍치마의 입장에서 다큐멘터리란 활동이고 개봉까지 한다고 하면 프로파간다적인 활동까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개봉 버전을 준비하면서는 저희들의 이런 태도가 반영이 되어 봉합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엔딩도 나오게 된 거지만, 관객들에게 미칠 효과를 고려해 날카로운 각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편집했어요. 사실 재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고민이 되게 많았거든요. 개봉이라는 절차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받게 되는 요청들이 있잖아요. 90분대로 줄여라, 엔딩은 명확히 해라, 반복적이고 모호한 부분은 쳐내라, 쭉 끌고 가는 식으로 내러티브를 보다 선명하게 해라, 뭐 그런 것들이요.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편집을 하는 동안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어요. 오리지널 버전에서 감행했던 여러 영화적 실험들을 들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고요. 그러다 김일란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동정범>이란 다큐도 연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연분홍치마의 활동이라는 것도 늘 현장과 연대하면서 다큐를 만들어 온 것이었고요. 그런데 개봉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이것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결과물이죠.

김일란 그런데 개봉을 염두에 두고 다시 작업했다고 할 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무래도 2017년의 촛불시위였다고 생각해요. 만일 촛불 이전에 개봉을 했다면 지금의 버전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더 우울했고, 암울했고, 패배감, 좌절감, 그리고 무력감이 저희 주변에 감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개봉을 하더라도 그런 감정을 고려한 버전으로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촛불을 지나 개봉을 준비한다고 할 때는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내볼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개봉 버전을 준비할 때 가장 크게 작동했던 변수라고 봐요. 





유운성 영화의 구성과 관련해 묻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충연 씨가 상당히 적대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추정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동정범>에서 이충연 씨를 보여주는 방식이 다른 분들과는 좀 달랐거든요? 동지회 모임과 관련해 대립이 시작되기 전에, 다른 네 분의 경우에는 여기까지 오게 된 개인적인 삶의 편린들이 주어집니다. 화초를 가꾸고, 경찰서에 연행되고, 딸과 통화를 하고 등등 이런 인간적이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쌓이다가 우리끼리 만나는 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데까지 오게 되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충연 씨의 경우에는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고 공식적인 행위를 하는 모습들만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저는 술 먹고 어영부영하는 거 싫어요!”라고 적대적인 발언을 하는 걸 보여줍니다. 이분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고민들을 드러내면서 이충연 씨에 대한 변호가 제시되는 건 오히려 영화의 뒤에 가서죠. 다른 네 분과 더불어 이충연 씨의 개인적인 모습들이 보다 앞에, 가령 도입부나 초반부에, 대립이 시작되기 전에 보여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는지요. 

김일란 이충연 씨의 경우에는 이분을 이해하는 데 저희도 좀 힘들었어요. 이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4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혼자 보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게 중요해요. 대단한 게 출소하시자마자 정말로 진상규명을 하시겠다면서 사방을 다니셨어요. 자신의 감정, 자신이 이렇게 느꼈다 이런 걸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다른 분들은 그렇게 돌아다니시기보다는 ‘나는 힘들어’라든지 ‘나는 너무 외로웠어’ 같은 감정으로 출발하셨거든요, 출소 이후에. 그런데 이충연 위원장은 마음이 급했어요. 출소하자마자 의욕에 넘치는 거예요. 

유운성 이분은 참사 당시 동지들에게 망루로 들어가라고 지시한 장본인으로서 책임이 있고, 또 책임을 느끼고 있고, 그것만이 아니라 아버지를 잃었고, 게다가 아버지를 뒤에 남겨둔 채 망루를 탈출했고,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것, 본인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런 것을 받아들이면 살기가 힘들어질 정도일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는 <공동정범>에서 대립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뒤에 나오고 있어요.

김일란 그것은 <공동정범>의 이야기의 순서이기도 하지만, 이충연이라는 개인이 실제로 자신에 대해 성찰한 순서이기도 하고, 더불어 저희가 이충연이라는 사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의 순서이기도 했어요. 다른 분들과 다르게 이충연 씨 본인이 저희를 공적으로 대했던 부분도 있고요. 

이혁상 이충연 씨는 실제 생활에서도 사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사적인 관계를 잘 만들지 않는 분이에요. 저와 집에서 둘이 촬영을 한다고 해도 사실 별 말씀이 없어요. 쉽게 깊은 관계를 잘 맺지 않으려 하는 분이죠. 그러니까 영화에서 이충연 씨가 강하게 적의를 드러낼 때 생기는 난데없다는 느낌은 바로 저희가 느낀 것이기도 해요. 이분은 늘 공적인 인물이었고, 사적인 공간에서는 그냥 별 말이 없이 계시는 분이고요. 실제로 술도 잘 안 먹고요. 

김일란 참사 이전의 이충연 씨가 어떤 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참사 이후에 저희가 본 이충연 씨는 정말 방어적인 사람이었어요. 이충연 씨를 처음으로 인터뷰한 게 2010년에 아버님 장례식 때문에 집행정지로 잠깐 나왔을 때 호프집 레아에서였어요. 그때 이충연 씨는, 아마 그때 제가 인터뷰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정말이지 열사 혹은 투사였어요. 개인이 아니라 열사, 혹은 열사의 아들이었죠. 투쟁을 어떻게든 감옥에서도 이어나가야 한다는 사명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 감정을 그대로 4년을 묵혔다가 나오자마자 투쟁을 계속 하고 싶은데 현실은 변해 있는 거예요. 현실은 이미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갔고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요원해진 상태였죠. 그러니까 몸이 달기 시작하는 거죠.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러다보니 동지회 분들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눈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혼자 집회에 다니고 다른 분들께는 같이 가자는 이야기도 안 하고 그런 상황이 돼 버린 거죠. 그런 상황에서 천주석 씨가 동지회 만들자고 했을 때 너무 빈정이 상한 거예요. 영화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같이 가자고 했을 때는 가지도 않더니 왜 이제 와서 힘들다고 하냐, 이렇게 된 거죠. 분명 이충연 씨도 생존자로서의 고통이 있었어요. 맨날 악몽 꾸고, 청심환 먹고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이라고 본 거죠. 그분에게는 유가족이라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혁상 저희 입장에서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나면서도 거의 말미에 가서야 이충연이라는 사람을 이해했던 것 같고요. 

유운성 그 이해의 과정이 영화의 구성에도 반영이 된 것이군요. 

이혁상 동지회 모임에 대립각을 세우는 발언을 하는 순간에 보이는 이충연 씨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가족이나 피해 철거민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것이잖아요. 그런 충격을 관객에게 주는 것이 이 다큐가 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바로 그 '드라이브' 때문에 이 다큐가 생존자나 피해자를 다룬 다른 다큐와 달라질 수 있었다고 봐요. 그리고 김일란 감독과 저 모두 어떤 장르적 구성에 익숙해 있다 보니까 먼저 미스터리한 상태로 무엇을 던져주고 나서 이후에 설명해 주는 방식이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요. 

김일란 이 영화는 대략 시간의 흐름 순서를 따라 진행되잖아요, 출소 이후에. 저희도 어느 정도는 이 영화의 인물들,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같이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들 밑에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불거지고 올라오는 거예요. 이분들이 반목하고 있는 상황을 감지했을 때 처음에 저희도 ‘어, 뭐지?’, ‘이 갈등은 어디서 시작된 거지?’ 그리고 ‘누구를 향한 거지?’ 하고 당황했죠. 개봉 버전에는 빠져 있는데 DMZ다큐영화제에서 공개한 최초 버전에는 이런 장면도 있었어요. 김주환 씨는 망루에서 나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충연 씨가 붙잡았대요, 도와달라고. 김주환 씨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남았어요.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될지 몰랐던 거죠, 두 분 다. 몰랐으니까 붙잡았던 거고 몰랐으니까 남았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게 갈등의 요인이 되는 거죠. 김주환 씨는 ‘네가 잡았잖아!’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충연 씨는 자기가 잡은 것도 기억을 못 한다는 거죠. 이충연 씨가 정말로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영화에 있었어요. 최초 버전에서는 이처럼 균형을 흔들흔들하면서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초반부터 양측의 균형을 맞추는 식은 아니고 흔들흔들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이번 개봉 버전에서는 그처럼 미세하게 흔들리고 진동하는 부분들은 정리를 하고, 편집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저희들이 느낀 갈등의 순서와 이해의 순서, 더불어 이충연 위원장 스스로도 깨달아가는 순서를 따라 정리했던 거죠. 조금 더 간결해지고 선명해진 부분이 있죠. 

유운성 ‘공동정범’이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에서는 인물들의 재판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2015년 10월, 참사 6년 10개월 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참사 당시 망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농성 철거민 좌담회를 개최한다. 용산 지역 철거민과 연대 지역 철거민들은 참사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는 자막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충연, 김주환, 천주석, 김창수 씨와 개별적으로 한 인터뷰 영상들이 좌담회 기록영상과 교차되면서 흡사 논쟁을 하는 것처럼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굉장히 센 부분인데요. 그래서 이충연 씨의 개인적 심경이나 처지를 드러내는 장면이 보다 앞에 배치되어 있었더라면 이 교차 편집을 통한 논쟁 장면은 훨씬 더 팽팽한 느낌을 주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지금은 이충연 씨가 다소 일방적으로 적대적으로 보이는 느낌이 있거든요. 영화에서 이충연 씨에 대해 보다 개인적으로 다가가는 부분은 이 좌담회 앞이 아니라 뒤에 배치되어 있죠. 물론 이 좌담회 장면 이후에 이충연 씨의 보다 개인적인 부분에 접근하게 한 현재의 형식도 분명 납득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선택이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는 없어요. 다만 현재의 구성을 취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궁금합니다.  

이혁상 이걸 얘기를 해도 되나? (웃음) 그러니까 이충연 씨와 저희들의 관계가 계속해서 <공동정범>의 구조에 반영이 된 것 같은데요. 조금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충연 씨는 바로 그 좌담회 때부터 정신을 차렸던 것 같아요. ‘아, 정말 상황이 이렇구나’ 그리고 ‘이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구나’ 라고 하는 것을 목격하고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고 했던 것이 그 순간이 처음이었던 거죠. 

유운성 그러니까 이충연 씨가 그렇게 생각을 다시 한 이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시작하는 것은 첫 좌담회 장면이 주는 충격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인가요? 그래서 감독님들이 느꼈던, 그리고 다른 네 분이 느꼈을 방식으로 이충연 씨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 납득을 하게 한다는……

김일란 그렇죠.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기도 하고, 이충연 씨가 유가족에서 생존자로 자신의 위치를 변동시키는 과정을 따르고 있기도 해요. 이분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이 점차 변화하게끔 편집이 되어 있죠. 이충연 씨는 감옥에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꽤 노력을 했고, 출소해서는 아버님에 대한 미안함은 한쪽에 접어놓고 진상규명을 향해 달린 거죠. 그러다보니 동지들이 김창수 씨의 말처럼 “진상규명이 대체 뭔가요?”라고까지 물어보게 된 거예요. 대체 뭘 위해, 무엇을 향해 저렇게 달려가는 걸까. 그 첫 좌담회 때 이충연 씨는 너무 위축되어 있었고 방어적이었고 동지들을 대면하는 것을 되게 두려워했었어요. 자기도 왜 그러는지 미처 몰랐던 것 같아요.  

이혁상 믈론 이충연 씨가 그 좌담회 이후에 바로 개과천선한 것은 아니었죠. 그 좌담회 이후의 심경, 혹은 심리상태에 대한 인터뷰도 했었어요. 저희 뿐 아니라 좌담회 자리에 있던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그 순간은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거든요. 그 순간은 모두에게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충연 씨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김일란 그래서 그런 고백도 하게 된 거예요.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요. 아버지를 두고 망루에서 뛰어 내렸고, 그뿐 아니라 제일 먼저 뛰어 내린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런 걸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유운성 어쩌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라 떠올리게 된 것일 수는 있는데, 영화의 구조 안에서 보면 이충연 씨라는 인물은 세월호 사태 당시 먼저 탈출한 선장과 배에 남았던 피해자의 형상이 동시에 겹쳐진 인물처럼 보이는 걸 피할 수 없는데요. 

김일란, 이혁상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그렇게 보일 수 있죠.

유운성 이 영화가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용산참사라고 하는 사건을 그 사건 이후에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큰 사건 가운데 하나인 세월호와 중첩시키는 방식 같다고 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세월호는 <공동정범>의 배면에서 나란히 전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게 또 이 영화의 불편한 지점 가운데 하나일 수 있죠. 

김일란 이충연 씨가 그렇게 방어적이 되는 게, 그 상황의 책임이 모두 나에게 있다고 남들이 볼 거니까 오히려 스스로는 반박하고 싶어지는 거죠. 그렇게 방어벽이 높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동지회 분들을 만날 때 이충연 씨는 참사 당일에 대해,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싫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분들과 만나 그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었죠,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만난 건데요. 그리고 자신에게 참사 당일과 관련해 어떤 것도 묻지 않는, 자신이 피해자로만 있을 수 있는 집회만 나갔으면 하는 거죠. 이런 점을 자신이 깨닫고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기까지 4년 넘게 걸렸어요. 

이혁상 이 영화와 세월호와의 관계는 정확히 저희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어요. 이충연 씨의 고백을 들었을 때 세월호 참사의 선장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고요. 그것은 영화에서 이충연이라는 인물의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점이었어요. 원래 이 영화는 이충연 위원장을 단독 주인공으로 한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방향이 잡혀 있었는데, 그게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오는 현재의 버전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사실 세월호 참사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