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효력 혹은 위력 : 인터뷰 중심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하여

CRITIQUE

말들의 효력 혹은 위력
: 인터뷰 중심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 대하여

이도훈 / 『오큘로』 편집동인




최근 몇 년 사이 하나의 동시대적 경향으로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인터뷰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들이 양적으로 축적되었다. <위로공단>(임흥순, 2014)을 시작으로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 미학>(이하 ‘감정의 시대’)(김숙현 & 조혜정, 2014),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박영임, 2015), <깨어난 침묵>(박배일, 2016), <그녀들의 점심시간>(구대희, 2016), <시 읽는 시간>(이수정, 2016)을 거치면서 인터뷰의 중요성은 다큐멘터리 양식 자체에 대한 비평적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들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발화를 수집하고 배열하여 공적인 이슈, 집단 기억, 감정 구조와 관련된 목소리를 구축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서의 목소리는 의미를 전달하고 진실을 생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일찍이 빌 니콜스는 다큐멘터리에서 나타나는 목소리의 양식을 네 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신의 목소리’로 대변되는 설명적인 내레이션, 직접성과 즉시성을 통해 리얼리티의 효과를 증대시키는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 인터뷰를 통해 참여자 또는 연출자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방식 그리고 대상에 대한 연출자의 인식 및 미학적 관점을 반영해 사건과 진실을 능동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다. 이 분류법을 참조하자면 앞서 언급한 최근 독립다큐멘터리들은 인터뷰에 의존하는 동시에 연출자의 자기 반영성의 흔적을 인장처럼 새기는 복합적인 양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로공단>(임흥순, 2014)


말들의 향연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독립 다큐멘터리들이 등장하는 분수령이 된 것은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이다. 이 영화는 약 40년간의 한국 여성 노동사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공간에서 근로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 기억, 정서를 심층 면접이라는 사회과학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전달한다. 임흥순은 제작단계에서 약 60여 명의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했고 그 중 23명의 목소리를 작품 안에 담았다.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가장자리에 위치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대항적인 역사 쓰기를 시도했다. 

인터뷰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독립 다큐멘터리가 전통적으로 중시해왔던 현장성과 시의성에 소홀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과 우려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현장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최근 인터뷰 중심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사건의 현장으로부터 눈을 돌려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체화하고 있는 인물과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들에서 현장은 부재한 것이 아니라 체화된 목소리를 통해서 발현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수의 개인적 발화로부터 집단적 목소리를 구축하려는 최근의 독립다큐멘터리들은 주로 여성과 노동자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를 정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영화들이 포착하고자 하는 정서나 감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심리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물을 둘러싼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들은 오늘날 여성 혹은 노동자의 목소리가 온전히 발화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며,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던 힘이 무엇인지를 따져 묻는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인터뷰는 지배적인 권력으로부터 소수자의 삶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전략으로 쓰인다. 그 영화적 전략이란, 한편으로는 인터뷰 자체를 형식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탈-형식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터뷰의 형식화란 의사소통으로서의 인터뷰의 형식, 즉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는 대화를 진행하면서 상호 간에 갖추게 되는 예의, 격식, 절차 등을 영화 속에 투명하게 드러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리고 인터뷰의 탈-형식화는 인터뷰의 과정 혹은 결과에 변화를 주거나 그 각각을 다른 영화적(시청각적) 효과와 결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인터뷰의 탈-형식화는 이미 전형화된 인터뷰 형식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거나, 인터뷰이의 신체로부터 목소리를 분리하거나, 인터뷰이의 발화를 현장의 다른 소리 및 영상과 결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대체로 최근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화면 내에서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관객은 화면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발화에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터뷰어의 존재감을 최소화하는 방식은 다큐멘터리의 역사 안에서 하나의 고전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예를 들어 에롤 모리스는 <천국의 문>(1978), <버논, 플로리다>(1981), <가늘고 푸른 선>(1988)과 같은 작품에서 인터뷰어로서의 존재감을 감추는 대신 연출자로서의 능력을 강화한다. 그 결과 인터뷰의 내용이 그 자체만으로 진실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허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가운데, 인터뷰는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더 큰 사회적 담론의 질서를 드러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들은 에롤 모리스처럼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인터뷰를 매개로 영화적 담론의 창출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롤 모리스적인 계통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김숙현 & 조혜정, 2014)


<감정의 시대>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작품은 현시대의 감정노동을 대표하는 특정 서비스 직종의 노동 현장을 재현한 세트를 배경으로 무용수들이 극한적인 몸동작을 취하는 과정을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정해진 시간 동안 무용수들이 고통을 견디며 흡사 수행이라도 하듯 특정한 몸짓을 취하는 모습은 감정 노동자들이 겪는 갖가지 굴종과 모멸의 순간을 표현한다. 세트장에서 무용수들이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위로, 연출자가 인터뷰를 통해 얻은 실제 감정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화는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을 직접 화면에 등장시키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일종의 사운드스케이프처럼 활용해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외적으로 풍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귀에 들리는 세계에 의해서 대리 보충된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그 역도 성립된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감정 노동자들이 처한 물질적 환경과 그 속에서 감정 노동자들이 겪는 신체적 구속을 조형적으로 그려내며, 귀에 들리는 세계는 실제 감정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은 고충, 고민, 고통, 불안을 직접적으로 담아낸다. 이처럼 이 영화는 시각적인 세계와 청각적인 세계의 변증법을 통해서 감정 노동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유도하고 있다. 

한편으론 인터뷰를 탈-형식화함으로써 듣기의 중요성은 물론 말하기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작품이 있다. 박배일 감독의 <깨어난 침묵>은 생탁이라는 막걸리를 생산하는 부산합동양조 소속의 노동자들이 비위생적인 근로 환경, 비인간적인 처우, 그리고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대해 회사 측에 항의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영화는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의식이 즉자적인 상태에서 대자적인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을 수사적으로 ‘침묵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표현한다. 좀 더 단계적으로 살펴보자. 영화가 시작하면 노동자들이 순차적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의자에 앉아 부동자세를 취하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각각의 노동자들이 화면에 나타날 때 외화면에는 노동자들의 실제 목소리가 겹친다. 비록 그들의 입은 닫혀 있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는 깨어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 오프닝에는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이 소리를 영화 전반에 확대 적용한다면 물리적 시간, 사회적 시간, 노동의 시간 등으로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지만, 오프닝에만 국한해 보면 관객이 영화 관람 시에 체감하는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두 개의 영화적 경험, 즉 노동자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시간 경험과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간 경험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관객을 향해 ‘이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며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시 읽는 시간>(이수정, 2016)


인터뷰의 탈-형식화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인터뷰와 퍼포먼스의 결합이다. <위로공단>, <감정의 시대>, <시 읽는 시간> 등이 구성면에서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결합시킨 경우에 속한다. <위로공단>과 <감정의 시대>는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했던 고통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퍼포먼스를 통해 표출한 경우이다. 두 영화에서 퍼포먼스는 좁게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넓게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연민, 공감, 위로를 위해 마련된 일종의 사회적 의례처럼 작동하고 있다. <시 읽는 시간> 또한 동시대의 삶의 불안정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특정 사안이나 계층보다는 개개인의 내면에 집중한다. 감독은 무작위적으로 선별한 인터뷰 대상자 - 주로 노동자 혹은 예술가 - 들에게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묻는다. 동시에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 각각에게 한 편의 시를 골라 낭독해달라고 요청한다. 인터뷰 참여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시에 관한 사연을 소개하고, 또 그 시를 카메라 앞에서 낭독할 때 그들은 삶에 예속된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창조하는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이 영화 속에서 인터뷰이가 퍼포머로 위치가 바뀌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이 질적인 차원에서 도약을 이룬다는 말과 같다.  

지금까지 인터뷰 중심의 최근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이 영화들은 인터뷰를 활용해 동시대에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불안의 정서를 포착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더불어 이 영화들은 인터뷰의 존재감을 키우거나 때로는 그것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킴으로써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이 작품들이 인간의 여러 감각 기관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하거나 동시대적인 청취 환경의 조건을 검토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귀로 듣는 것에 무디어졌던 영화적 경험에 대해 재고해볼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많은 영화 비평가 혹은 학자들이 영화란 타인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끔 한다고 말한 바를 상기해본다면, 타인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 또한 영화 관객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이자 권리이며 의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