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와 어버이연합의 만남을 상상하다: <우리 손자 베스트>(2016)

REVIEW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만남을 상상하다
: 김수현의 <우리 손자 베스트>(2016)

조지훈




다큐멘터리였다면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해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정보를 추가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2016)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영화를 통해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실체를 알고 싶기보다는 흥미로운 내러티브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는 일베/어버이연합의 시점에서 줄거리를 끌어간다. 즉, 이들을 비판해야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만든다. 영화는 낮에는 할 일 없이 돌아다니며 밤에는 열광적으로 인터넷 활동을 펼치는 일베 청년과 ‘종북 척결’을 위해 싸움도 불사하지 않는 어버이연합 회장과의 마주침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 마주침에서 익숙한 구성의 결합을 본다. 두 주인공의 우정을 다루는 버디 영화와 악당을 주인공을 다루는 피카레스크풍 영화의 결합. 이 결합으로 인해 영화는 일종의 성장물로 구성된다. 감정이입의 포인트는 주인공 일베 청년이 자신의 “선배”인 어버이연합 회장을 만나서 성장하고 무언가를 함께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장면들에 있다.

감정이입에 편리하게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둘 다 사회적 약자다. 일베 청년은 취업도 하지 못하고 고시원을 돌아다니며 병리적인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불우한 청년이고, 어버이연합의 회장은 골목대장일 뿐 국가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쓸쓸한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두 약자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우정은 애틋하다. 청년은 노인의 역사관에서 한 수 배우고(“유행이 지난 것 같지만, 김대중이야 말로 종북의 뿌리다”), 노인은 청년의 퍼포먼스(세월호 농성장에서의 폭식투쟁)에 감탄한다. 주인공이 우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익히 볼 수 있을법한 이 설정을 통해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건강한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일베와 어버이연합은 척결해야 할 악이 아니라, 관심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본 것일까?




그러나 일베에 관한 글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일베와 어버이연합의 우정이라는 설정이 과연 가능한 것일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일베의 동력은 “애국”과 “종북타파”와 같은 이념적 층위에 있다기보다는, 혐오나 냉소와 같은 정념적 층위에 있으니 말이다. 즉, 일베가 종북 타파와 어버이연합의 종북 타파가 동일한 수준의 것이지는 미지수다. 일베와 어버이연합 각각은 국가를 매개로 이념의 층위에서 연대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념의 층위에서, 즉 영화에서처럼 사회적 약자로서의 박탈감과 인정욕망이라는 정념에 의해서 서로가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들이 관심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인지조차도 의심스럽다(근래의 일베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들은 일베가 반드시 청년 빈곤층과 연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가 일베의 실체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연구서도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극영화이니 말이다. 다만 영화가 상상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과연 일베와 어버이연합이 결합되었을 때,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들 안에 있는 정념의 차이를 그토록 쉽게, 술 한 잔에 긍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이는 일베와 어버이연합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정념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들을 이해하기 편리한 방식으로 정념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 아닐까?

영화는 특이한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더불어 카메라가 담고 있는 종로의 거리도 특이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영화가 독특함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일베와 어버이연합이라는 주인공들의 소속에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독특함을 살리기 위해선 이 두 인물이 낯설게 다가와야 하는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은 낯설어지기보다는 친숙해진다. 정념의 차원에서 인물을 다룬다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정념으로 인물을 다룬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정념적으로 약한 이들이 우정이 가능하다는 방식으로 이들의 괴물과 같은 타자성을 희석시켜버린다. 이들을 내러티브화하면서 타자의 기이함에 주목하기보다 타자 안에 있는 우리와 공유될 수 있는 정념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일베와 어버이연합이 만나면 어떤 내러티브가 발생할지는 정말 궁금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러티브의 영역에서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그래서 어떤 다른 시사점을 가지고 올 수 있을지는 궁금하다. 그렇지만 그 내러티브는 우정 어린 버디영화를 초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해할 수 있는 일베-어버이연합의 만남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이들의 만남을 보고 싶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런 상상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