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기억 그리고 역사: 라야 마틴 X 백종관 대담

INTERVIEW


꿈, 기억 그리고 역사: 라야 마틴 X 백종관 대담



※ 아래 대담은 라야 마틴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 공연 준비를 위해 광주를 찾았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2015년 9월 12일과 13일 양일에 걸쳐, 그는 자신의 첫 무대극 <그의 죽음은 의뭉스럽다>를 선보였다. 그는 현재 프랑스 영화평론가 앙투완 티리옹(Antoine Thirion)과 함께 "유실된 영화들로 이루어진 비경쟁 영화제"인 <언도큐멘타 UNdocumenta>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언도큐멘타> 행사는 2016년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아시아 예술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 행사 안내]    



백종관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무대 작업에는 처음 도전하는 것인데 무엇이 당신을 무대로 이끈 것인가?

라야 마틴 무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건 내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영화와 연극이 공유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영화가 연극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적지 않고. 연극은 영화보다 위험 요소는 적지만 변수는 더 많은 예술로 느껴진다. 영화를 만들 때는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며 만들 수 있지만 연극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을 다시 촬영할 수 있지만 연극은 그럴 수 없다. 연극은 영화와는 다르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는데 이 점이 매력적이다.

백종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가능성을 얘기했지만, 연출자로서 당신은 먼저 기획 의도대로 당신의 연극을 만들어 가는 것을 우선해야 하지 않나.

라야 마틴 그렇다. 연출된 것과 우연한 사건들이 조화를 이룰 방법을 찾고 싶다.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도 여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행복한 사고/우연(happy accident)'이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 내고 싶다.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 Buenas Noches, España>(2011)


백종관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그러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떠오르는 건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 Buenas Noches, España>(2011)에서 당신이 8mm 필름으로 작업한 영상들이다. 촬영한 필름을 수작업으로 현상하고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라야 마틴 셀룰로이드 필름을 좋아한다. 카메라라는 매개 없이 직접 필름을 가공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무대 연출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백종관 혹시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는 연극이나 퍼포먼스가 있는가?

라야 마틴 딱히 그런 작품은 없다. 솔직히 내가 공연을 잘 아는 편도 아니고.

백종관 영화 외에 다른 예술 작품을 관람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건가?

라야 마틴 그렇지는 않은데... 내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그렇다! (웃음). 영화 외에 공연도 자주 보았고, 특히 동시대의 무대 작업에서 뭔가를 발견하곤 하기도 했다. 연출자가 다루려는 개념을 어떻게 무대화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영화의 경우엔 내가 그 메커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므로 기억하기도 쉽다. 반면 공연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작품에 대한 감상보다 그때그때 나를 자극하는 장면들에 더 반응하고 그런 부분적인 인상들을 간직하는 편인 것 같다. 

백종관 당신의 영화 중에는 필리핀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다. 이번 무대 작업에도 필리핀의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있는지?

라야 마틴 물론 있을 수 있다. 다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굳이 설명적으로 필리핀의 역사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필리핀의 역사 교육 방식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에는 자국의 역사는 잘 알지 못하면서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그것도 다른 문화권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필리핀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보다 흥미롭다. 나는 필리핀의 과거를 영화를 통해 다시 바라보려 노력해왔다.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the Indio Nacional>(2005)


백종관 필리핀의 과거를 다룬 당신의 영화 가운데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the Indio Nacional>(2005)이 떠오른다. 필름으로 촬영된 흑백 무성영화인데,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보편적이었던 영화 포맷을 차용해 작업했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공연을 연출할 때도 특별한 매체적 선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해도 될까? 

라야 마틴 무성영화 시대,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작업한 감독들의 역할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당대의 영화감독들은 주로 세트장에서 작업했고 그 안에서 배우를 배치하고 여러 스태프를 지휘하여 어떤 장면을 만들어 냈다. 무대 연출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들 때는, 비록 촬영된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이면에서 여러 준비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그러한 과정들 자체를 퍼포먼스로 보여줄 방법을 찾고 있는데 여러 선택이 가능할 것 같다. 

백종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다음 상영작 Next Attraction>(2008)의 첫 번째 파트가 떠오른다. <다음 상영작>의 전반부에는 어떤 영화 촬영장의 풍경이 별다른 설명 없이 제시되고 후반부에는 전반부에서 보았던 촬영 과정의 결과물로 보이는 영화가 이어진다. 

라야 마틴 그렇다. 바로 그 전반부와 같은 장면들을 연상할 수 있겠다. 누군가가 무엇을 만드는 것에 대한 기록,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백종관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

라야 마틴 영화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이미 집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놀았었다. 혹시 <무비 매직 Movie Magic>이라는 프로그램을 아는가? 1990년대에 방송된 미국 TV 프로그램인데 영화제작에 대해 이런저런 방법을 알려줬었다. 어떻게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여러 가지 특수효과 테크닉을 설명해 주곤 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치 영화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혼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백종관 당신은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형식적인 실험을 시도하곤 했다. 그런 실험적인 스타일은 어떻게 습득하게 된 것인가?

라야 마틴 내가 영화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개 TV 방송이나 광고 관련 사업들에 더 관심이 있었고,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조차도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성향이 다른 교수가 한 명 있었다. 그를 통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영화들이나 오래전의 무성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때 할리우드 영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실험영화를 주로 연구하는 교수도 있었는데, 그를 통해 마야 데런이나 스탠 브래키지처럼 대표적인 실험영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인 알렉시스 티오세코(Alexis Tioseco, 1981~2009)를 비롯해 몇몇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실험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백종관 실험영화들은 어떻게 접할 수 있었나? 마닐라에 필름 아카이브가 있는지?

라야 마틴 필름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아카이빙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아카이빙은 1980년대에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이들 단체가 마련한 상영회를 찾아가 보기도 했고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온라인으로도 보고 해적판을 구해서 보기도 했다. 한때는 아마존을 통해 무척 많은 DVD를 모았는데 희귀한 DVD들도 꽤 있었다. 주문한 DVD를 받아보는 느낌이 참 애틋했던 기억이 난다.


<상영중 Now Showing>(2008)


백종관 <상영중 Now Showing>(2008)의 여주인공 리타가 DVD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것도 그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겠다.  

라야 마틴 DVD 가게는 내가 늘 시간을 보내던 장소였다. [DVD 가게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리타를 보여주는] 그 장면… 비록 극장 스크린 앞은 아니지만, 영화와 삶이 마주치는 순간을 담아내려고 했었다. 우리 삶을 둘러보면 다양한 형태로 영화가 존재하고 있지 않나. 

백종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키들랏 타히믹 특별전(2014.8.15~17)이 열렸을 때 타히믹이 직접 방문해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는데 굉장했다. 타히믹에게도 영화를 배웠다고 들었는데, 언제 어떻게 만났던 것인가?

라야 마틴 영화학교 인턴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년 정도 그의 작업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광고회사 같은 곳에서 배우기를 희망했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더 궁금했었다. 나는 이미 그의 영화를 알고 있었고, 그는 나름 영화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인턴십 기간에 뭔가 그럴듯한 일을 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와 함께 어울리는 게 좋았다. 실제적인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 그를 곁에서 지켜보는 동안 그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내게 은연중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백종관 키들랏 타히믹도 역시 필리핀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 

라야 마틴 그렇다. 그의 영화는 표현 방식이 내 영화보다 직접적이다. 

백종관 필리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라야 마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종종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분명 필리핀에서 태어난 필리핀 사람이지만 필리핀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어딘가에 소속된 듯한 느낌 말이다. 필리핀 안에 있을 때도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진다. 이런 감정이 왜 생기는지 이해해보려고 하는 과정, 그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필리핀 역사에 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직접적인 계기를 생각해 보자면 아마 자라온 환경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는 역사가는 아니셨지만 역사를 부지런히 공부하셨고 역사의식이 뚜렷한 분이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가족이 함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리핀 역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백종관 작품을 만들다 보면 본인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이 은연중 배어나는 것 같다. 당신의 영화 <상영중>의 중반부에는 리타와 그녀의 엄마가 함께 라디오를 듣는 장면이 있다. 무서운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 같던데…

라야 마틴 그건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라디오 방송이다. 매우 흥미롭게 들은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필리핀 정부가 특정 시간 이후에는 전기 공급을 중단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한 정전은 실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사위가 어둠에 잠기는 그런 순간을 대할 때면,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 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그곳은 전기는 물론이고 많은 것들이 없는 곳이었다. 정전의 순간은 어린 시절 그 최초의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에만 의존해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 시골에 살았을 때는 나를 돌보던 유모가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나는 마녀 이야기로 나를 겁주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하늘을 나는 마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두려움이나 공포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인 의미와 맞물려 있으니까.


<완벽하게 사라지는 법 How to Disappear Completely>(2013)


백종관 당신이 만든 첫 작품은 <휴가 Bakasyon>(2004)라는 단편영화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영화는 지금 당신이 얘기해 준 그런 어린아이의 두려움이나 공포에 관한 이야기였다. 

라야 마틴 혹시 내가 최근에 만든 장편 <완벽하게 사라지는 법 How to Disappear Completely>(2013)을 보았는가? 이것은 내가 <휴가>의 세계로 돌아가 만든 영화다. 

백종관 소녀가 있고, 그녀의 할머니가 있고…

라야 마틴 그렇다. 전적으로 <휴가>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작품이다. 

백종관 <휴가>와 <완벽하게 사라지는 법> 사이에 당신이 만든 일련의 영화들을 돌아보면, 호러 장르라고 규정할 수는 없어도 호러의 정서가 은연 중에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회적인 공포감이 만연한 작품들이었다고 할까? 

라야 마틴 영민한 감각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체제전복적인 요소를 짚어내는 이들도 있지 않나. 호러 장르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영화에도 그러한 전복적인 면이 있을 수 있겠지.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외에 다른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백종관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Dreams>(1990)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라야 마틴 사실 그 영화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몇 번인가 다시 보려 했는데... 결국 여지껏 못 보았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건 내가 본 첫 영화다. 네 살 때쯤이었나? 비디오테이프로 부모님과 함께 보았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말이다.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펼쳐졌고 매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곧 다시 찾아봐야겠다!

백종관 당신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를 띠는 것인지?

라야 마틴 영화다, 마치 기적 같은! (웃음). 잠에서 깨어 꿈을 기억해 보려 할 때가 있다. 꿈을 기억하려 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려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했던 것을 기억하려 하는 것. 당신은 현재에 살고 있다가 잠들면 꿈을 통과해 기억의 지대로 들어간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차원이 있고, 동시에 꿈과 기억의 세계가 현재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최근 들어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여러 세계 속에서 여러 명의 다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꿈이란 이런 것이다. 다른 차원의 세계이며 기억과 같은 것. 우리는 여기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백종관 지금 우리가 여기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누군가 우리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가?

라야 마틴 그렇다.

백종관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묻고 싶다. 라야 마틴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라야 마틴 뭐라고 대답하길 원하는 건가! (웃음) 영화는 내가 늘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영화는 그런 것들에 실체를 부여하고 물질화시키는 작업이다. 나는 여전히, 영화라고 하면 필름의 물질성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상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질 수 없는 영화라니!

백종관 이제 많은 극장이 DCP 상영시스템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런 경향이 당신에게는 별로 탐탁지 않겠다.

라야 마틴 그렇다. 도대체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하지만 DCP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이 DCP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영화라는 매체는 어떻게 변화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백종관 당신이 캐나다 영화잡지 『시네마 스코프 Cinema Scope』의 편집장 마크 페란슨과 함께 만든 최근의 영화 제목은 <라스트 무비 La última película>(2014)다. 데니스 호퍼의 <라스트 무비>는 본 적이 있지만 당신의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세상의 종말, 영화의 종말에 대한 당신의 언급이 들어있는 영화라고 들었는데? 

라야 마틴 그건 <라스트 무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