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안건형,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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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안건형, 2014)


안건형 감독(<고양이가 있었다>(2008), <동굴 밖으로>(2011))의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With This Thou Wilt Not Perish>는 2013년에 진행된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ecc.saii.or.kr)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64분짜리 에세이 영화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2013.11.16~30)를 통해 40분 버전으로 첫 공개되었고, 이후 보완을 거쳐 완성된 64분 버전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토탈 리콜: 기록하는 영화, 기억하는 미술관」(2014.4.11~6.8) 전시를 비롯해 인디다큐페스티발(2014)과 DMZ국제다큐영화제(2015) 등에서 상영되었다.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영상 전편 및 관련자료를 감독의 동의를 얻어 이곳에 소개한다. 더불어 곽영빈 평론가의 비평문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함께 소개한다.





_________________director's essay________________
"영화는 책이 될 수 있을까?"_ 안건형


많은 사람이 영화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화의 죽음이란 더 이상 새로운 영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영화가 아직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새로운 영화 만들기에 관한 픽션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영화다. 가령 이렇게 생각해 보자. 영화가 책이 될 수는 없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다. 지금, 그 중에서 논문 혹은 학술서적 같은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한다.

인용으로서의 촬영

논문과 영화는 닮은 점도 있고, 또 서로 다른 점도 있다. 닮은 점 가운데 하나는 둘 다 무언가를 인용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촬영이라는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도 안 되는, 딱 적당한 만큼의 이미지를. '딱 적당한 만큼'이란 영화의 길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 때 이미지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촬영 현장으로 향하는 영화감독은, 꼭 자료를 찾아 넓은 도서관을 헤매는 대학원생과 같다. 졸업논문 마감을 석 달 정도 앞둔 석사 2년 차 대학원생의 심정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많은 출처들 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가. 저 사람의 고통은 슬픈 표정으로 보여져야 하는가 아니면 뒤돌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보여져야 하는가. 어떤 현실을 인용해야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영화에서 인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개별적 사실들이다. 개별적 사실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논문과 영화의 닮은 점이라 할 수 있다. 개별적 사실이란 파편적이고 비(非)체계적이며 그 자체로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시적이며 영화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논문과 마찬가지로 영화란 이런 것들을 잘 배열해서 체계를 세우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논문-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라면 몇 가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부재하는 대상들

영화는 '없는 대상'을 찍을 수는 없다. 없는 대상이란 부재하는 것, 추상적인 것, 비가시적인 것, 사라져버린 것, 혹은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영화가 촬영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엉뚱한 대상이나 부적합한 대상일 뿐이다. 예컨대 길을 촬영하려 할 때, 길 대신 찍히는 것은 아스팔트,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 건물들을 뒤덮은 광고판들이다. 이처럼 길이라는 것은 본디 추상적이다.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너무나 많은 사실들이, 참이기도 거짓이기도 한, 반박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차단된 수많은 파편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이미지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영화에서 인물이 하품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사전에 계획된 연기인지 순간적인 산소부족으로 인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게다가 구분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건 단지 한 번의 하품일 뿐이고, 그것이 하품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기 때문이다. 

픽션 영화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논픽션 영화의 경우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논픽션 속의 등장인물이 어느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고 가정하자. 그가 걸핏하면 우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 순간 평생 처음 운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알지도 못하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 눈물은 딱 그 만큼의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파편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배열해내곤 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흔히 좋은 다큐멘터리라 말해지는 것은 사실들의 가장 비현실적인 조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정: 홍제천과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

이런 가정을 해 보자. (이 가정이 사실인지 허구인지의 여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긴다.)

"1970년도의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에 따라 유진상가와 신영상가가 홍제천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허구였고, 실제로는 당시 정치가들이 공유 수면인 서울의 하천들을 치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만든 명분이었을 뿐이다."

이 가정이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명제들은 학술서적이나 논문의 결론이 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전거들에서 따 온 문장들의 인용을 통해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해야 한다.

여하간 위의 가정과 같은 결론으로 향하고자 하는 논문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논문은 물길 바로 위에 지어진 유진상가와 신영상가의 건축허가가 어떻게 났는지에 대한 자료를 인용할 것이다. 또한 당시 서울 하천 위에 세워진 많은 건물들이 세운상가와 거의 흡사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인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건물들의 명분이 바로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의 주요 시행방안인 대형 상품터미널 건설이었다는 것도 인용해야 할 것이다. 상품터미널이라는 거창한 말과는 달리 실제로 이 건물들은 도소매상에게 분양하기 위한 상가건물이었다는 것, 이런 대형 건물들이 대부분 기존 전통시장 부근에 세워졌고 결국 인근 전통시장의 상권을 흡수하며 자리잡았다는 것도 인용할 것이다. 고급아파트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명분으로 상가 위층에 지어졌던 고급아파트는 수 년이 지나도록 미분양 상태였다는 것도 인용하면 더 좋겠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건물이 어떻게 치부의 수단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 갔다는 사실과 이에 관련된 수사기록을 우선 인용해야 하겠다. 자격 미달인 건설사가 건축허가를 받았고 건물이 공공도로를 무단 점유하는 등, 여러 불법적인 문제들이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인용해야 한다. 특히 유진상가를 지은 신성공업의 경우 그 직전에 지은 신성상가로 인해 발생한 채무를 변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진상가 건축허가가 받아냈다는 것, 그리고 신성상가의 엄청난 채무는 사실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 수익이 나는 법인체와 비용 처리를 하는 법인체를 분리해서 만들어낸 - 가짜 채무였다는 것도 인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성상가에 사무실을 개설했던 많은 국회의원들의 명단과 이들이 어떤 식으로 법을 입법했는지도 인용하면 좋을 것이다. 

영화와 인용의 문제

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결론을 영화는 다룰 수 없다. 아무리 긴 영화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약 위와 같은 결론을 내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영화일 것이다. 몇 개의 단편적인 사실들을 이상한 방식으로 배열해서 마치 결론의 도출과정이 타당한 것처럼 꾸며낸 것일 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영화는 추상적인 것을 찍을 수 없다. 신영상가는 홍제천 복원 계획으로 철거되어 이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니, 촬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 위에’ 있고 ‘세운상가와 외형이 비슷한’ 유진상가가 전부이겠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는 논문과 같은 방식으로 인용의 수단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문은 기존의 전거들을 인용할 수 있지만, 영화는 논문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인용할 수 없다. 영화가 인용의 대상으로 삼는 세계는 (신영상가처럼) 이미 사라지거나 변형되기 일쑤이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영화는 더 이상 세계를 인용하지 않는다. 영화가 인용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영화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존재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영화가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아도 대중들은 끊임없이 영화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인용이 지닌 위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계는 온갖 낯선 것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중 어떤 것이 자신의 순수함을 더럽힐지 알 수 없다는 데 대한 공포. 이건 미성숙한 존재들이 겪는 공포감이다. 촬영된 이미지 자체는 언제나 사실이리라는 믿음 때문에 영화는 촬영된 이미지라는 안전한 세계 속에서 언제까지나 고집스럽게 머무르려 한다. 그 대가로 영화관에 불이 켜질 때마다 영화는 매번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와 죽음

어쩌면 인용의 영화들, 논문-영화가 이미 어디선가 발생했을 수 있다. 그게 아주 오래 전이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영화는 없는 것, 부재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믿음 속에서 무언가를 인용하고, 또 스스로 인용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내세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폐쇄된 세계를 고집하면서, 결국 촬영을 포함해 다른 모든 종류의 인용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 영화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영화의 완전한 죽음이란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세계를 인용하지 못할 때 발생할 것이다.

Ⓒ 안건형

※ 이 글은 원래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전시 당시 출간된 연계 책자(2013)에 수록되었던 것이다. 


 _________________critic's review_________________
"흐르는 물(질성)"_ 곽영빈 미술평론가


[...]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전시에서 첫 공개된 40분짜리 싱글채널 영상작품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는 ‘사라짐’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사라지지 않음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붓으로 쓴 글씨를 물로 씻는다’는 의미의 세초(洗草)가 기억될 역사와 망각될 역사를 선별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그는 “기억은 선택되었고, 선택되지 못한 기억은 망각되었다”고 지적한다. 「확장된 개념의 경이의 방」 전시를 위해 그와 함께 팀을 이뤄 작업했던 최종현의 글1에 대한 일종의 ‘선택적 인용’이라 할 이 작품에서 안건형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18세기의 문인 허필(1709-1761)이다. 강세황의 그림에 글을 써넣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던 그는 필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혜환 이용휴는 허필에게 바쳐진 「허연객 생지명(許烟客生誌銘)」2을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是子之不死也)”라는 문장으로 끝낸다. 안건형은 이 문장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았는데, “하지만 그로부터 200여 년간 허필이라는 이름은 잊혀진다”라는 자막과 더불어 이는 일종의 아이러니 효과를 낳게 된다.

당대의 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철저히 잊힌 허필의 운명은 홍제천 주변의 다른 건물도 공유하는 것이다. 최종현이 (재)발견한 수많은 지명과 건물들이 언급되지만 “그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없다.” 이는 이미 사라진 것뿐 아니라, 멀쩡히(?) 서 있는 건물에도 적용된다. 홍제천변의 유진상가는 이미 사라진 신영상가와 같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이기에 “유진상가를 통해 사라진 신영상가를 볼 수 있다.” 작품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세검정은 1941년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은 1944년에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화재 발생 2달 전, 조선총독부와 경성제국대학은 풍경이 황폐화됐다는 이유로 세검정 이전을 계획 중이었다”는 것을 언급한 그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세검정은 1944년에 사라졌을 것”이라고 쓸쓸하게 토로한다. 여기엔 오스망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롭게 재건축된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목도하고, 20세기 초의 바이마르 공화국과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17세기의 독일 속에서 벤야민이 읽어냈던 우울이 자리한다.3 

하지만, 안건형의 작품이 우울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홍제천이 “물이 흐르는 도심 속 생태하천으로 주민 품으로 돌아왔다”는 당시 서대문구청장의 언급은, 홍제천에는 원래부터 물이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로 인해 실소의 대상이 된다. 홍제천이 “원래 우기에만 물이 흐르던 건천”이었다는 사실, 홍제천의 옛 이름인 ‘사천(沙川)’ 혹은 ‘모래내’가 “물이 흐르지 않고 모래만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은 이 아이러니를 더욱 차갑게 만든다. 무엇보다 홍제천을 지금의 홍제천으로, 즉 인공펌프에 의해 하류의 물을 끌어올려 상류에서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 재생되게 만든 펌프시설장이 ‘조경’작업에 의해 가려짐으로써, “이 시설이 보이지 않게 되자 홍제천의 풍경이 완성됐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뒤이어 작가는 “복원된 것은 홍제천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 홍제천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이었다”는 날카로운 통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지적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제천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일견 단순한 사실에 직면할 때다. 홍제천이 (랑케의 유명한 말을 빌면) ‘존재했던 형태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가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복원”한 일종의 ‘시뮬라크르’라는 지적은 정확한 것이지만, 동시에 홍제천이 (개념이 아닌) 물질로 존재하며, 그런 의미에서 ‘추상적인 관념’ 따위로 쉽게 기각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홍제천이 “더 이상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마음대로 “사라질 수도 없게”되었다고 쓸 때, 작가는 - 나아가 관객들은 - 사물의 이 기이한 상태와 조우하게 된다. 이는 그의 작품을 ‘낭만주의적 환상의 형상화’라는 (다분히 관습적인) 독해로부터 구제해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를 간과하면, 원본과 무관하게 “복원”(?)된, “명승지나 고적이 아니고, 과거 전통의 복제품도 아”닌 세검정이 “자신과 함께 만들어진 역사를 증명하고 있”기에 “세검정과 그 역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는 언명들을 텅 빈 문장으로 읽(고 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물론 이 문장들 속에서 ‘명승지’와 ‘고적,’ ‘전통’과 ‘역사’란 개념이 ‘내파’되는 것은 사실이며,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세검정은 1944년에 사라졌을 것”이라는 체념적인 언급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감과 유머가 정점에 이르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복원된 세검정의 계단 배치와 기둥 개수 등이 원형과 다르다는 한 박물관 학예사의 문제제기가 “곧바로 잊혀졌다”고 지적하면서, 안건형은 그렇게 남은 세검정조차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다시 한 번 그의 표현을 빌면, “단지 세검정이 복원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다른 기능은 없다”는 아이러니가 생성되는데, 이는 단순한 우울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성찰 뒤에 등장하는 “세검정은 존재 자체만을 기능으로 한다”는 코멘트와 함께 삽입된 지극히 평범한 세검정의 전경은, 들뢰즈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에 쓴 표현을 빌면, 일종의 ‘발작(un spasme)’을 일으킨다. 잘 알려진 것처럼, 들뢰즈는 베이컨의 캔버스에 구현된 변형된 육체, 그들이 육화하는 뒤틀림의 감각작용이 일반적인 의미의 운동과는 다름을 강조한다. 운동이 실질적인 공간 혹은 장소의 점유와 그들 사이에서의 ‘이동’을 통해 발생하는 것임에 반해, 우리가 베이컨에게서 보는 것은 “제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운동(un mouvement sur place)”이라는 것이다. 이 차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재현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를 넘어, 비틀리고 변형되는 “육체에 대한 보이지 않는 힘들의 작용(l'action sur le corps de forces invisible)” 자체가 포착되기 때문이다.4

들뢰즈의 지적은 (그림과 영상이미지 사이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안건형의 작품이 형상화하는 핵심이, 재현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재현을 (오)작동시키는 (역사적) (불)가능성의 조건들이라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사실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 안건형의 작업은 벤야민이 얘기했던 유물론적 역사학자의 것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그가 ‘변증법적 이미지’라 부른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사진 1


전시기간 중 열린 공개강연에서 작가 자신이 강조했듯, 이 이미지(사진 1)는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핵심적인 이미지다. 무엇이 그를 이 이미지로 이끈 것일까? 가장 단순하고 자명한 답은 (역시 작가 자신이 강조했듯) 여기에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가 다룬 ‘모래내’와 주변의 핵심적인 장소들이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에 실증적인 정보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 평범해 보이는 이미지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나의 가설은 이 이미지에, 안건형이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에서 다룬 사물의 세 가지 상태 혹은 시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공사 중인 부분과 공사 후 혹은 공사 전 상태의 대립을 형성하는 화면의 좌측과 우측은, 그 둘 사이에서 흐르는 개천에 비친 잠재성으로서의 풍경 혹은 건물에 의해 완성된다(사진 2). 아니, “완성된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좌측과 우측의 풍경이 구현하는 (공사 중인) 현재와 (공사 후의) 미래 혹은 (공사 전의) 과거란, 어떤 의미에서 이 장면이 촬영된 현재시점, 아니 그 전과 그 이후 여전히 흐르고 있(었)을 개천의 흐름, 거기서 개천처럼, 아니 개천‘으로’ 흐르고 있는 풍경/사물의 잠재성이 서로 다른 시간축으로 배분되어 ‘현실화된(actualisé)’ 양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이미지는, 딱딱한 물질이면서 동시에 흐르고 있는 것으로서의 물(건), 지금은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채 서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질 풍경으로서의 현실이라는 서로 다른 (시점의) 양태들 뿐 아니라, 그렇게 서로 다른 양태로 분기하는 흐름으로서의 시간 그 자체(le temps lui-même)를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2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유진상가를 통해 사라진 신영상가를 볼 수 있다”는 문장은 유진상가 역시 신영상가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지만, 유진상가가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 자체를 폐기하진 않는다. 신영상가라는 유령(적인 것)에 의해 시달리지만(haunted), 유진상가는 (아직) 유령이 아니다. 그것은 폐허, 스미드슨의 절묘한 표현을 빌면 “버려진 미래들의 기억의 흔적들”5이다. [...]

Ⓒ 곽영빈 

※ 이 글은 계간 『인문예술잡지 F』 제12호(2014년 2월 1일 간행)에 실렸던 「폐허의 넝마주의들과 흐르는 물(건), 혹은 무한에 대처하는 법」에서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을 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