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텔레비전, 환영: 박민하 X 유운성 대담

INTERVIEW

사막, 텔레비전, 환영: 박민하 X 유운성 대담


※ 이 대담은 2014년 12월 19일부터 29일까지 시청각(audiovisualpavilion.org)에서 열렸던 박민하 작가의 개인전 <Telecast Baghdad> 당시 마련되었던 아티스트 토크 및 대담 기록을 녹취해 정리한 것이다. 대담은 12월 20일 오후 5시 <전략적 오퍼레이션 ―하이퍼 리얼리스틱> 상영 후 진행되었다. (편집자)



<Telecast Baghdad> 전시장 전경, 시청각 Ⓒ 박민하


유운성 방금 상영된 박민하 작가의 <전략적 오퍼레이션―하이퍼 리얼리스틱 Strategic Operations―Hyper Realistic>(이하 <전략적 오퍼레이션>)이라는 작품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미리 보았고 오늘은 와서 전시를 보았는데요. 이 영상작품은 박민하 작가의 전작 <A Story of Elusive Snow>(2013)와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은 눈을 매개로 삼아 가짜 눈 만드는 회사의 홍보영상들과 기존 영화들에서 발췌한 영상클립 등을 편집해 만든 것이었는데, 거칠게 정리하자면 <전략적 오퍼레이션>과 유사하게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허구적인 것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시면 이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 ‘Strategic Operations’라는 이름의 회사 홈페이지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www.strategic-operations.com) 이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보면 회사가 제공하는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군사훈련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플로차트가 있습니다. 이 전시장 벽면에도 걸려 있지요.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장면을 구성하는지, 기존의 군사훈련 프로그램은 어떤지, 그리고 이 둘의 장점을 결합해서 ‘강화’했다는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군사훈련 프로그램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플로차트입니다. 그런데 이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럴싸하게 만들어두기는 했는데 이런 식의 뭔가 있어 보이는, 유사-과학적인 플로차트들이 흔히 그렇듯이 꼼꼼히 따져보면 정말 부조리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플로차트를 찾아보게 된 것은 이 회사가 내세우는 ‘하이퍼 리얼리스틱’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거든요. 제가 이 플로차트를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회사의 정의를 문자 그대로 밀고 나가자면 ‘하이퍼’란 픽션,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하이퍼’란 말의 뜻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죠. 회사의 주장대로라면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군사훈련이란 영화와 기존의 군사훈련의 결합 그리고 그것 더하기 ‘무엇’이어야 하는데 아무리 플로차트를 들여다봐도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이 플로차트는 없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하이퍼’라는 걸 폭로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이퍼’라고 하는 것은 그저 주장일 뿐인 것이죠.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메인화면에 홍보영상이 하나 있는데 이 영상의 제목이 ‘Strategic Operations Business Card’입니다. 그러니까 이 회사의 ‘영상 명함’인 거죠. 10분 정도 되는 영상인데 일부는 방금 상영된 작품에도 활용되었습니다. 이 홍보영상은 이 회사가 어떤 식의 군사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꽤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의 고어 호러무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상입니다. 

박민하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A Story of Elusive Snow>와 <전략적 오퍼레이션>을 보면 영화적 특수효과를 제공하는 회사 및 그곳과 관련된 기술, 인력, 장소 등에 관심이 많으신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러한 영화적 특수효과의 가상성과 관련된 영상들, 과거에 만들어진 영화나 광고에서 발췌한 클립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때 컴필레이션 필름(compilation film)이라 불리기도 했고 흔히 파운드푸티지(found footage) 영화라 불리는 이런 작업은 오늘날 미술계와 영화계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박민하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굉장히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요. 2010년경에 만든 <유령소풍>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남북한의 국경지대 공동경비구역(JSA)은 외국인의 경우 관광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틀이나 사흘 후 적어도 일주일 안에 일정을 잡아 방문할 수 있는데요. 한국인의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최소 30인 이상 45인 이하의 인원을 모아 희망하는 날짜 60일 전에 미리 서류를 통일부에 제출해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개인의 방문이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그 국경이란 일종의 ‘전시를 위한 국경’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하간 JSA에 갈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남양주의 종합촬영소 안에 있는 JSA 세트, 즉 가짜 JSA를 찾게 된 거예요. 제가 직접 유령으로 분장을 하고 그곳에서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 안에서는, 제가 일단 세트장 안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떻게 보면 ‘가짜’가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영상 안에서는 리얼리티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 다른 작업들도 해 왔지만 이러한 경험을 보다 잘 살펴보고 싶다는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A Story of Elusive Snow>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든 것인데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서울에서 보았던 ‘눈’을 이곳에서도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착수하게 된 작업입니다. 눈을 찾다 보니 가짜 눈을 만드는 회사들을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 자체가 영화산업이 기반이 되는 도시기도 하잖아요. 특수효과를 위한 눈을 제작하는 회사에 대해 언급하고 기존의 영화에서 눈과 관련된 영상들을 발췌해 사용한 이유는 영화야말로 로스앤젤레스라는 지역에 대한 아카이브로 기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전략적 오퍼레이션>에서 중동이 아닌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가짜’ 중동을 만들어낸 회사들도 그와 비슷한 경위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유운성 <Strategic Operations―Hyper Realistic>라는 제목은 ‘Strategic Operations’라는 회사명과 이 회사의 모토인 ‘Hyper Realistic’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영화는 이 단어들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군사 용어로 ‘Operational Strategy’라는 용어는 실제로 흔히 쓰입니다. ‘작전 전략’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Strategic Operations’라고 이렇게 쓰는 용례는 없거든요. ‘Strategic’과 ‘Operations’ 사이에 ‘무엇’을 위한 작전인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들어가야 해요. 예를 들면 ‘Strategic Air Defense Operation’이라고 하면 ‘전략적 방공 작전’이 되는 것인데, 이처럼 전략적인 ‘어떤’ 작전인지가 명시되어야 하죠. 그래서 그 ‘어떤’을 생략해 버린 이 회사 이름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딘가가 비어있는 프레임을 제공하면서 그 비어있는 곳을 우리가 채워 주겠다, 라고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비어 있는 자리를 ‘하이퍼’로 메워 주겠다는 것이겠죠.

이 회사의 모토인 하이퍼 리얼리스틱을 이들은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나 궁금해서 찾아본 것 가운데 하나가 앞서 말한 플로차트입니다. 회사 홈페이지에서 이 회사가 정의하는 하이퍼 리얼리스틱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훈련 환경에서 전쟁터의 조건들을 고도로 충실하게 모사함으로써 훈련 참여자들이 기꺼이 불신감을 내던지고 전적으로 몰입하여 그 결과 스트레스에 대한 예방접종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스트레스에 대한 ‘예방접종’(inoculation)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컴필레이션 필름 혹은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하는 작가들 가운데 가상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이들로는 히토 슈테예를이나 하룬 파로키도 있고, 박민하 작가의 스승이기도 한 톰 앤더슨도 있습니다. 파로키나 슈테예를의 경우에는 확실히 이미지의 지위나 본성에 대한 관심이 훨씬 크다고 하면, 앤더슨의 경우에는 <로스앤젤레스 자화상 Los Angeles Plays Itself>(2004)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영화가 재현해내는 공간과 실재의 공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가 한데 접혀 있다고 할 수 있는 박민하 작가의 작업에서 특별한 점이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미지, 영화 혹은 매체의 지위를 문제 삼는 것은 이제 긴급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이미지들은 점점 카메라가 아니라 아예 직접 우리의 눈 자체를 표준으로 삼으려 들고 있습니다. 초고화질(UHD)이니 몰입형 가상현실(IMR) 같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어떤 것을 흡사 ‘그것처럼’ 보여주는 것, 즉 그럴싸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걸 목표로 하죠. 그러면 이미지와 대상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대상 자체가 바로 그것인지가 굉장히 애매해집니다. 파로키나 슈테예를이 ‘이 이미지는 (대상과 관련된) 바로 그 이미지인가’라고 묻는다면, 박민하 작가는 아예 대상에 대고 ‘너 말이야, 너는 내가 알고 있는 네가 맞아?’라고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A Story of Elusive Snow>의 허구적인 내레이터는, 눈을 찾아다니고, 직접 눈을 만들어도 보고, 눈을 만져도 보고, 눈에 관한 영화도 살펴보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너! 내가 알고 있는 너냐?’라는 물음 주위를 맴도는 것입니다.

사진이라고 하는 것의 지표성(indexicality), 사진은 카메라 앞에 과거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고 하는 증거라는 것, 이것은 이미 비디오와 텔레비전이 도래한 이후에는 낡은 이야기가 되었죠. 나아가 이미지가 그것의 지지물(support)과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미심쩍은 것이 되었습니다. 필름이 스크린에 영사되는 경우에는 이미지가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분명히 우리 뒤에 영사기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습니다. 설령 (애니메이션의 경우처럼) 지표성이 덜하거나 없는 이미지가 영사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이미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 뒤에 지금 영사기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되는 겁니다. 그런데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시대에는 그것이 애매해졌습니다. 누군가가 지금 막 이 방에 들어와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 프로그램을 본다고 가정해 보죠. 만일 장비들이 적절히 감추어져 있다면 이때 그 사람은 자기가 녹화된 것을 보고 있는 것인지 현재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고, 또한 그것이 녹화된 것이라면 컴퓨터를 통해 재생되고 있는 것인지 비디오를 통해 재생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전면화된 지도 한참이 지난 지금에는 그런 것도 낡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이미지가 그 이미지가 맞는가?’라는 물음이 중요하게 되었지요. 제가 최근에 직접 겪었던 경험 하나가 떠오릅니다.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었는데 올해(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입장권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바로 받아서 영화관 입구에서 보여주면 입장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를 도입했어요.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에는 화면 캡처 기능이 있잖아요. 저도 스마트폰에 입장권을 다운받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입구에 서 있다가 ‘잠깐만요!’ 하고서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문지르는 행위를 보여줌) 이러는 거예요. 입장권 이미지가 혹시라도 누군가가 캡처해서 보내준 이미지인지 아니면 그 어플리케이션에 실제 저장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화면을 위아래로 문질러 본 것이죠. 이처럼 ‘이 이미지가 바로 그 이미지가 맞는가?’  하는 물음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어떤 고약한 이들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부분 뿐 아니라 그 외화면 영역의 정보까지도 캡처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지르는 정도로는 이 이미지(화면에 보이는 입장권)가 바로 그 이미지(합법적 입장권)인지 확인할 수 없게끔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일단 입장권 이미지가 보이는 화면을 끄고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관련 어플리케이션이 실제로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저 고약한 이들은 또 …. 끝도 없이 이어질 겁니다. 프로그램 개발자와 해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끝없이 도망치고 쫓아가는 그런 놀이만 남겠지요. 이미지의 지지물이 스마트폰 바탕화면의 어플리케이션인 시대, 즉 이미지의 지지물이 이미지 자체인 시대에는 원리적으로는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이미지만 남습니다. 기술적 도상(technische Bilder)의 시대에 모든 프로그램은 항상 메타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고 이 위계는 끝이 없다고 본 빌렘 플루서의 통찰이 생각납니다. 자, 그런데 또 이 이미지가 그 이미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의 시대라는 것도 어느덧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불과 10년 동안에 말이죠. 

사진적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전략적 오퍼레이션>과 <A Story of Elusive Snow>는 바로 지금 말씀드린 토픽에서부터 출발하는 작품들처럼 보입니다. 비단 이미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건 자체가 바로 그 사물 혹은 그 사건이 맞는가 하는 전면적인 회의주의와 관련된 작품들인 것이죠. ‘너 말이야, 내가 알고 있는 네가 맞아?’인 것이죠. 이런 물음이 가능해진 것은 어떤 이미지, 보다 폭넓게는 가시적인 모든 것의 기준이 카메라, 스크린, 모니터가 아니라 인간의 눈 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눈이란 카메라, 스크린, 모니터 등에 의해 기술적으로 강화(reinforcement)된 눈이죠. 강력하게 회의적인 주체의 눈입니다. <A Story of Elusive Snow>의 내레이터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너는 내가 알던 눈(雪)이 아니야’ 라고.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이런 부인이나 부정 혹은 저항을 반복하는 것이 언젠가 도래할 긍정의 계기를 예비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전략적 오퍼레이션>에 나오는 공간들은 관람자 혹은 훈련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몸을 지닌 이동식 카메라이자 모니터이자 스크린이라고 가정하고 설계된 영화적 공간(세트)입니다. 이와 관련해, 작품 제목이 화면에 뜨고 나서 바로 나오는 영상이 재미있었습니다. 도널드 덕이 사막에서 신기루 얼음기둥을 껴안았다 떨어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클립이었지요. 이 사물이 정말 그 사물인지에 대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기도 했고, 또 이 클립 속에는 <전략적 오퍼레이션>의 군사훈련장의 지리적 배경이 되고 있는 사막도 등장하지요. 사물의 정체에 대한 불신이라고 하는 박민하 작가의 주제에 부합하는 클립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전략적 오퍼레이션>에는 그 외에도 많은 영화클립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민하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곳 시청각의 사랑채 전시실에 가보면 캘리포니아 지도가 하나 걸려 있는데, 거기에는 어떤 영화들이 어느 지역에서 촬영되었는지, 군사훈련장은 어디에 있는지 등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적 오퍼레이션>의 영화 클립들이 공간적으로 캘리포니아의 사막 이곳저곳에서 촬영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전략적 오퍼레이션>에 삽입된 영화들을 살펴보면 어떤 것은 SF이고, 조르주 멜리에스의 <사라지는 여인 Escamotage d'une dame au théâtre Robert Houdin>(1896) 같은 영화도 있는데, 다들 뭔가 ‘가상’과 관련된 것들이죠. 그런데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영화도 있기는 해요. 그 가운데 하나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자브리스키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데스밸리에서 히피들이 난교에 빠져있는 장면의 클립이 사용되었는데요. 이것은 <전략적 오퍼레이션> 전체를 고려해 볼 때 시각적으로나 주제적으로나 일종의 일탈, 혹은 다른 방향으로의 산책처럼 여겨집니다. 

박민하 <자브리스키 포인트>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정치적인 맥락도 있고 시대적인 맥락도 중요한 영화라서 좀 망설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에 나오는 히피들이 환각(hallucination)을 경험하는 상태이고, 히피들의 그러한 환각상태, 약에 빠져 있는 그런 상태들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만나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략적 오퍼레이션>에서 활용한 여러 영화클립들은 주로 환각이나 환상과 관련된 것들, 즉 실제 세계에 있지 않은 것들의 프로젝션(투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 앞부분에 ‘세계의 끝’이라는 이름을 지닌, 스크린이 없는 사막의 극장이 나오잖아요. 그 ‘세계의 끝’이라는 극장을 시작으로 해서 제 작품 속에서 사막의 지평선을 향한 일종의 프로젝션이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모하비 사막에 있는 군사훈련장도 일종의 프로젝션을 통해 생긴 환영이자 영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시에 중동에 대한 서구의 판타지, 즉 적대시하는 시선으로서의 프로젝션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막이라는 곳에서 나타나는 외계인이라든지, 괴물이라든지, 이런 환각적인 것들이 어떤 면에선 일종의 [적대적 시선의] 프로젝션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비슷한 맥락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제 작품 속에 삽입된 다른 영화들과 느낌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맥락에서 삽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촬영된 지리적 위치가 데스밸리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영화의 많은 다른 컨텍스트를 생략하고 그 부분만 삽입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세계의 끝'(End of the World) 영화관, 이집트

  
유운성 방금 말씀하신대로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이 작품에서 주제적 일탈처럼 여겨지긴 해도 그것이 무작위적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니까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자브리스키 포인트>의 그 히피들, 사막에서 뒤엉켜 있는 이들이야말로 사막이 사막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사용된 여러 영화클립에 등장하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막의 ‘사막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죠. <전략적 오퍼레이션>에 인용된 여타의 영화들에서는 사막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실재의] 사막이란 것을 감추기 위한 장치들이 있지요. 캘리포니아의 사막이 아니고 우주공간 어딘가의 행성이라는 식으로, 혹은 아이언맨이 등장하는 중동의 어느 장소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자브리스키 포인트>에서 히피들의 난교, 그 몸짓은 의미가 부재하는 세계에 대한 시각적 메타포로서의 사막에 어떤 ‘의미’라 할 만한 것을 끌어들이려는 몸부림이죠. 

영화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특수효과 장치들이 <전략적 오퍼레이션>의 군사훈련장에서는 현실을 보다 영화적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차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장 보드리야르나 폴 비릴리오의 개념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마련인데요. ‘Strategic Operations’ 회사가 제공하는 플로차트를 보면 맨 위에는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훈련 시나리오(이것을 A레벨이라고 합시다), 가운데에는 일반적인 군사훈련 시나리오(B레벨), 맨 아래에는 영화나 텔레비전 촬영을 위한 시나리오(C레벨), 이렇게 3단계로 나눠 보여 주고 있어요. 이 회사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안내, 그리고 저 플로차트에 함축되어 있는 가정들을 살펴보면 ‘하이퍼 리얼’이란 ‘전쟁, 혹은 전쟁 게임과 영화의 결합’으로 명확하게 정의됩니다. A레벨은 B와 C레벨에 있는 것들을 다 포괄하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전적인 몰입이라는 것이 예방접종의 수준이긴 해도 스트레스의 주입과 관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에 따르면 전적인 몰입이란 뭔가 다 잊어버리고 쾌락과 함께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몰입이란 얼마간 예방의 차원에서 주입되는 스트레스를 수반한다는 아이디어가 우선 흥미로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이퍼 리얼이란 영화를 통해서 강화된 현실이면서 현실을 통해서 강화된 영화라는 가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C레벨에서, 세트(sets), 소품(props), 의상(wardrobe)이라고 불렸던 것들이 B레벨로 가면 [실제로는 동일한 것들인데도] 용어가 바뀝니다. ‘훈련구조물’(training structures)이라고요. 그러더니 또 플로차트 맨 위의 A레벨로 가면, B와 C레벨을 통합해서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구조물, 소품, 의상’(Hyper-Realistic structures, props, wardrobe)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영화에서의 소품, 의상과 군사훈련의 용어를 결합한 다음에 거기에 그저 ‘하이퍼 리얼리스틱’ 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 하이퍼 리얼리스틱인가,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지요. 굉장히 이상한 플로차트입니다. 

박민하 작가의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일 겁니다. ‘하이퍼 리얼리스틱’이라는 용어를 저 회사는 ‘강화’(reinforcement)의 의미로 쓰고 있는데요. 특히 시각적 강화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기준에 맞춰서 강화할 것이냐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강화의 기준이 되는 것이 어떤 시각적 미디어로도 매개되지 않은 인간의 눈이라는 것, 박민하 작가는 여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영화나 텔레비전 제작에 해당하는 C레벨에서는 인간의 눈에는 불충분할지 몰라도 카메라를 통해 매개될 경우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중요하고, 일반적인 군사훈련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B레벨에서는 [한국 예비군 훈련장의 조악한 구조물들처럼] 인간의 몸이 돌아다니게 될 물리적 구조의 배치가 중요하고,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A레벨에서는 그런 물리적 구조의 존재만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시각 자체에 직접 호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말씀하신대로, ‘Strategic Operations’ 회사의 훈련장은 단순히 군사훈련장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세트장도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신기루이자 환영으로서 영화 자체를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구현하고 있는 것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이겠죠. 인간의 눈 자체를 ‘라이브 워 게임’(live war game)을 위한 UHD(Ultra High Definition) 카메라이자, 스크린이자, 모니터로 간주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저 회사가 지향하고 있는 하이퍼 리얼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회사는 궁극의 영화를 지향하는 프로덕션처럼 보여요.  

이상의 것들이 ‘Strategic Operations’ 회사의 웹사이트와 플로차트 속에 숨어있는 가정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숨은 가정들이 그렇다는 것이고, 플로차트와 웹사이트의 안내를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분장과 불꽃효과가 역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고 반복가능하게 되면 하이퍼 리얼한 것이고, 구조물이 가변적이면 하이퍼 리얼한 것이고, 배우 내지는 연기자가 중동 현지어를 쓰는 사람들이면 하이퍼 리얼한 것이라는 식인데요. 서툴게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방법론을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이런 정의는 그 자체로만 따지면 보잘 것 없습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하이퍼 리얼리티란 가짜인데도 우리 눈으로는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사실적으로 보이는 완벽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백이 있어요. 이 회사가 가정하는 리얼리티의 ‘엣지’(edge)가 있어요. 최근에 개봉한 SF영화의 제목을 차용하자면 ‘엣지 오브 리얼리티’가요. 그걸 넘어서면 안 됩니다. 그건 바로 죽음입니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하이퍼 리얼리스틱한 군사훈련 프로그램은 결코 이 선만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기묘하게도, 이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는 죽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 다 집중되어 있습니다. 

박민하 이 영화에는 [조사하고 수집해 두기는 했지만] 결국 삽입하지 않은 자료들이 굉장히 많아요.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전쟁에 참전을 해서 진짜 부상당했던 군인들이 있었는데 이 회사의 훈련장에 와서 다시 다치는 순간을 연기하고 있는 거예요. 군사훈련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두 부류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팀은 아직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참전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로 구성된 팀이었고 다른 한 팀은 참전 경험이 있는 이들로 구성된 팀이었어요. 이들이 함께 모여서 협동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통해 장차 파견될 이들은 배우고, 참전했던 이들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회사 측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거지요. 피 흘리는 상황을 재연하는 것도 많아서 훈련장에 들어가기 전에 안전 경고도 합니다. ‘매우 위험하지만 여러분들은 안전할 것입니다.’라는 경고는 마치 테마파크를 연상시키기도 해요.


<전략적 오퍼레이션 ―하이퍼 리얼리스틱>, Ⓒ 박민하


유운성 그런데 이곳이 정말 테마파크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그저 무언가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을 옮겨놓고, 제공하고, 재현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이번 전시의 제목이 ‘텔레캐스트 바그다드’(Telecast Baghdad)입니다. 여기서 ‘텔레’ 그리고 ‘캐스트’라고 하는 용어가 굉장히 중요해 보이거든요. 바그다드는 바그다드인데, 멀리서 전송 혹은 방송되는 바그다드인 것이죠. 영화평론가 레이몽 벨루는 “텔레비전은 비전이 아니다.”(Television is not vision)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텔레캐스트 바그다드’란 말에는 어떤 장소에 대한 보여줌/보기인데 또 보여줌/보기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 부정의 뜻이 분명히 들어 있지요. 실제로 <전략적 오퍼레이션> 작품 곳곳에 자주 비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텔레비주얼적인 이미지들입니다. 예컨대 1983년에 만들어진 소니 Hi-Fi 데모 영상 클립을 활용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이 영상클립이 나오기 전에 보이는 것은 영화나 텔레비전 촬영장에서 사용되는 소형크레인인 지미집(Jimmy Jib) 그리고 거대한 모니터인데, ‘신호 없음’(no signal)을 알리는 컬러바가 떠 있는 모니터로 클로즈업해 들어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무언가 다른 곳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옮겨오는 ‘텔레캐스트’, 여기서부터 출발해 생각하다 보면 이런저런 연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요. 이 전시공간에도 그와 연계되는 것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신기루의 원리에 대한 도해도 있고요. 신기루라는 것도 먼 곳의 이미지를 전송(transmission)하는 것이잖아요. <전략적 오퍼레이션>을 처음 볼 때는 사실 그게 눈에 잘 안 들어 왔었어요. 그런데 점점 이 작품은 텔레비주얼한 시각, 텔레비주얼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산포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민하 텔레비전의 어원을 살펴보면, ‘텔레’(tele)란 멀다는 뜻이고 비전(vision)이란 시각이라는 뜻이잖아요. ‘멀리 보다’ 혹은 ‘먼 곳에서 보다’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바다나 사막처럼 시각적으로 감각이 마비되는 환경에서 오래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환각 작용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어부들이나 항해를 오래 하는 사람들은 바다 수평선과 하늘을 계속 보게 되는데, 이들이 거대 오징어나 바다 괴물을 목격했다는 등의 옛날이야기가 나온 것도 시각적으로 동일한 자극이 지속되어 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환각이 일어나게 되는 원리 때문일 거라고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 오래 있다 보면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사막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과 텔레비전과 환영 이 셋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A Story of Elusive Snow>의 특수효과 회사나 <전략적 오퍼레이션>의 군사훈련장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를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의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CG를 많이 쓰지 이런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들은 키치하게 보여서 이러한 효과를 쓰는 것은 드문 일이 되었죠. 저는 직접 이 군사훈련장을 가서 보기도 했고 또 그곳 관계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회사 광고영상에도 보면 이 회사의 사장이 나와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데 영화적 특수효과를 군사적 용도로 변경하는 과정에 대해 말하면서 CG로 인해 아날로그적 특수효과의 수요가 줄었지만 이러한 군사훈련 프로그램에 도입함으로서 군인들이 생존기술을 익히게끔 하는 더 중요한 일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특수효과 기술의 전환과 관련된 맥락도 있더라고요. 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들은 1970년대나 1980년대까지 주로 활용되던 특수효과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효과들이 차용되어서 전쟁 게임으로 흡수가 된 것이고, <전략적 오퍼레이션>에 인용된 사막에서 촬영된 몇몇 영화들도 <아이언 맨>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지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 설치한 이 조형물, 로봇 같기도 하도 폭발물 혹은 빙산 같기도 한 이 은색 조형물에도 그 당시 SF영화에서나 활용되었을 법한 특수효과의 키치함이 있어요. 또 사막이라고 하는 장소의 텅 빈 지평선에서 벌어지는 환영, 신기루 현상도 제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떠올리게 되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유운성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우리 눈앞으로 전송하는 것인데 미국의 사막에 있는 [중동이라고 하는 먼 곳에서의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캠프를 굉장히 당대적인 방식의 텔레비전으로 간주한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이미 전면화되어 있고 요즘 우리가 가는 영화관 또한 초대형 화면의 HD텔레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전략적 오퍼레이션>에서는 먼 곳의 사건이 모니터 혹은 스크린에 전송되는 게 아니라 아예 물리적이고 구조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도 한 번 더 따져봐야 할 텔레비주얼한 시각이 아니겠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전시공간의 배치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략적 오퍼레이션>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바로 그것, 전자기적 신호를 통한 사건의 전송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사건 자체를 트랜스포트 혹은 트랜스미션하는 하이퍼 리얼리티라고 하는 개념을 조금 더 공간적인 것으로 풀어놓은 것은 바로 이 전시 자체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자체가 일종의 텔레비주얼적 환경(televisual environment)을 공간 안에 구성하고 있죠. <전략적 오퍼레이션>에 삽입된 한 영상클립에서 이라크에 다녀 온 병사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모래를 만지면서 ‘모하비사막의 이 모래먼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모래먼지와 같은 종류의 먼지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정확히는 영어로 ‘pretty much same kind’죠. 문득, 아 그렇구나, 저거야말로 하이퍼 리얼의 정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이퍼 리얼은 정확히 똑같은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당히’(pretty much) 같은 것이어야지요. 아예 같은 것이면 거기서는 하이퍼 리얼이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엣지 오브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고, 그 ‘엣지’란 것은 죽음이며, ‘pretty much same kind’한 모든 것이 가리키는 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을 수도 있지만, 여기는 안전해.’라고 이야기하는 장치가 사실은 하이퍼 리얼이라고 하는 것이죠.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군인이 그 모래를 만지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까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제는 오늘 오신 분들의 질문을 받아볼까 합니다. 

관객 1 이 작품을 진행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지 궁금하고요. 전에 만드셨다고 하신 <A Story of Elusive Snow>라는 작품은 보지 못했는데 어떤 점에서 연결이 되고 또 이번 작업과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만드실 작업은 어떤 것이 될지 궁금합니다. 

박민하 이 작품은 진행하는데 총 1년 정도 소요되었어요. 사실 정작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을 때는 이런 미군 훈련장이 있는지 몰랐고 한국에 와서 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곳의 촬영허가를 받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와 스태프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군인 가족들이었거든요. 저와 제 스태프는 3달 정도 기다려 허가를 받아 함께 이곳에 촬영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굉장히 웃긴 것이, 아주 폐쇄적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개방되어 있는 곳도 아니거든요. 가령, 촬영을 할 수는 있지만 군인의 에스코트 하에 제한된 구역에서만 촬영이 가능해요. 그리고 이번에 상영한 이 작품은 전시 버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사용하지 않았던 자료들을 추가해서 다른 버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간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책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A Story of Elusive Snow>는 로스앤젤레스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데 그것을 찾고자 하면서 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과의 관련이라면 어떤 장소를 특수효과를 통해 다른 장소로 바꾸는데 있어 산업적인 방법으로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영화가 환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해 냈던 방법을 이제는 군사훈련장이나 쇼핑몰 등이 차용한다는 점이지요. 

유운성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A Story of Elusive Snow>에는 일인칭의 화자가 있어요. 어느 정도는 박민하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약간은 허구적인 화자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는 보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이라고 하는 대상, 그걸 찾다보니 아까 말씀하신 특수효과 회사들을 찾게 되었던 것이죠. 그들이 만들어낸 광고 영상들도 작품 속에 차용이 되고, 또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 같은 영화의 클립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 즈음에 로스앤젤레스의 쇼핑몰에서 인조 눈이 내리는 광경은 <전략적 오퍼레이션>의 군사 훈련장처럼 영화적 특수효과가 현실의 공간에 활용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죠. 

박민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쇼핑센터 그로브 몰(Grove Mall)을 촬영한 것인데요. 정말 재미있는 것이 크리스마스 2주 전부터 매일 밤 7시와 8시, 정각부터 5분간 몰 전체에 눈이 와요. 진짜 무슨 『신데렐라』 같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마법처럼, 쇼핑몰에 있는 커다란 시계의 바늘이 밤 8시를 가리키면 종이 뎅뎅 울리고, 특수효과 회사가 설치해 놓은 가짜 눈 생성기계들 ― 각 건물 옥상에 숨겨져 있거든요 ― 이 눈을 하늘에 흩뿌리는데, 이게 거품으로 만들어져서 실제로 녹기까지 해요. 카메라로 찍어 놓은 영상을 보면 진짜 눈처럼 보이지요. 이것이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이 눈이 쇼핑몰 안에서만, 특정한 시간에만, 즉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만 내리기 때문입니다.

관객 2 영화를 보면 본인의 보이스오버가 들어가는데요.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이스오버를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자막을 넣는다거나 그냥 이미지만으로 표현한다든지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박민하 <A Story of Elusive Snow>와 달리 <전략적 오퍼레이션>은 개인적인 맥락이 거의 없는 작품이라 저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 하면 더 까다로워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영상 안에 제 목소리를 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옛날에는 퍼포먼스 작업도 많이 했었거든요. 이제는 그렇게 직접 작품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대신 제 목소리가 이미지들을 움직이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드는 작업들은 주로 많은 영상클립들이 콜라주처럼 모여서 이루어지는데, 그것들을 바늘처럼 꿰매주는 것이 저의 목소리, 보이스오버이지 않나 싶어요. 자막으로 대신하지 않은 것은, 이미 영상 내에 반드시 자막으로 처리해야하는 텍스트들, 이미지로 기능하는 텍스트들이 있어서 보이스오버를 대신하는 자막이 또 들어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