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오큘로 총서의 두 번째 책으로 미국의 실험영화감독 너새니얼 도어스키의 대표작 『헌신의 영화』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01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열린 ‘종교와 영화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되었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읽혀온 현대 영화미학의 중요한 고전이다.
너새니얼 도어스키는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 전달의 수단이나 시각적 재현의 매체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영화는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을 새롭게 열어주는 경험이며, 관객을 보다 깊고 충만한 현실 감각으로 이끄는 예술이다. 그는 이러한 영화적 경험을 ‘헌신의 영화(Devotional Cinema)’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헌신’이란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적 믿음이 아니라,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두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책은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물질적 조건인 빛과 어둠, 시간, 간헐성, 그리고 숏과 컷 등을 하나씩 탐구하며, 영화가 어떻게 관객의 의식과 신체, 감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로베르토 로셀리니, 오즈 야스지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존 포드 등 영화사의 중요한 감독들을 경유하지만, 이 책의 관심은 단순한 텍스트 해석이나 비평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를 본 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영화 경험의 본질을 탐구한다.
영화감독이자 영화 교육자, 비평가로 활동해온 도어스키는 자신의 영화 작업을 통해 오랫동안 영화의 물질성과 영성을 탐구해왔다. 스탠 브래키지 이후 미국 실험영화의 중요한 계보를 잇는 영화작가로 평가받는 그의 예술적 실천과 사유가 이 책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숏폼과 자극적인 영상이 범람하는 오늘날, 『헌신의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매체의 본질에 관한 통찰을,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스크린을 마주하는 경험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헌신의 영화』는 영화를 해석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저자 소개
너새니얼 도어스키 Nathaniel Dorsky
너새니얼 도어스키는 1964년부터 아방가르드 전통 안에서 영화를 제작, 상영 및 전시해 왔다.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미술관과 극장에서 상영되었으며 뉴욕현대미술관, 퍼시픽필름아카이브, 하버드필름아카이브, 이미지포럼, 아비뇽실험영화아카이브, 퐁피두센터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옮긴이 소개
김혜민
책 속에서
“여기서 제가 사용하는 ‘헌신’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종교적 형태의 구현을 가리킬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이는 숨겨진 것을 경험하고 주어진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열림 혹은 멈춤(interruption) 이에요. 영화가 이를 수행할 때, 즉 영화가 현세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몰입을 전복하고 우리 현실의 깊이를 드러낼 때, 영화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한 더 충만한 감각으로 우리를 열어줍니다. 영화가 헌신의 형태로 살아 숨쉬는 것이지요.” (18페이지)
“마지막 영화가 끝나자 녹색의 금속 옆문이 열려 늦은 오후 햇살이 비췄고, 우리는 골목을 따라 거리로 걸어 나왔어요. 그때 느꼈던 정말 기이한 감각이 기억납니다. 햇빛의 질감은 낯설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멀게 느껴졌어요. 정말 갑작스럽게도, 평소에는 내 기준점이었던 정상적인 것들이 모두 으스스하고 수상쩍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게 낯설고 동떨어진 듯 느껴졌죠.” (21페이지)
“우리는 영화를 어둠이라는 맥락에서 관람합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앉아 빛나는 세상을, 즉 스크린의 세계를 지켜보죠. 이러한 상황은 시각의 본질에 대한 은유이기도 해요. 보는 과정 그 자체를 놓고 보면 우리의 두개골은 어두운 극장과 같고,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세상은 말하자면 일종의 스크린이죠. 우리는 세상을 우리의 두개골이라는 어두운 극장에서 보고 있는 거죠. 방이 어두울수록 스크린은 더욱 빛납니다.” (28페이지)
“결국, 정말로 조밀한 것이 존재할까요? 자세히 보면, 우리의 시각조차도 간헐적으로 보이며, 이는 왜 패닝이 영화에서 종종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게 보이는지 일러줍니다.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시각적 경험은 영화의 간헐성과 유사합니다. 간헐성은 우리 존재의 매우 깊은 핵심에까지 파고들어, 영화는 이 핵심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동합니다.” (34페이지)
“컷이 이러한 위계 구조를 존중할 때 숏의 숨통이 열리고 활기를 얻습니다. 동시에, 컷은 명료함으로 영화적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요.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주제와 잘 연결되어 있을 때 영화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표범과 같이 됩니다. 아름답고, 유동적이며, 의미로 충만해지죠.” (59페이지)
“시각의 형언할 수 없는 특성이 어둠 속에 투사된 빛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화에 엄청난 힘을 부여합니다. 온전히 드러나는 영화는 우리의 정신을 재정비하고 우리를 감사와 겸손을 향해 열어주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영화가 그 진정한 본성에 내재된 방식으로 표현될수록 영화는 우리에게 더욱 잘 드러날 수 있을 거에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더 마음을 열고 우리 존재의 심연에 닿으려 할 때 우리는 더욱 잘 헌신에 동참하게 될 겁니다.” (62페이지)
펴낸날 2026년 5월 28일
발행인 유운성, 임경용
펴낸곳 미디어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