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경기장: 함정식의 영상작업에 대한 짧은 노트

CRITIQUE

감각의 경기장
: 함정식의 영상작업에 대한 짧은 노트

유운성 / 『오큘로』 공동발행인



함정식 개인전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사루비아다방, 2017.3.29~4.28) 전시 사진


함정식의 작업이 겨냥하는 바는 언제나 분명하다. 종종 그는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것을 지시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것, 이는 그의 작업에서 시종일관 견지되는 원칙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가리키겠다고 한 대상을 정확히 가리킬 뿐인데도 그의 작업을 통해 포착된 대상은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 감각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실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임을 뜻한다. 사물과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이를테면 그가 걷기라는 움직임에 주목할 때는 특정한 걷기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는 ‘터벅터벅’이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걷기라는 것을 일정한 주기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만드는 두 다리의 어긋남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이다. 그리고 제법 활기차게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두 번 촬영한 후 각각의 영상을 좌우로 이어 붙여 ‘터벅터벅’에 상응하는 시각적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가 찬송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면, 우리는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찬송가는 물론이고 찬송가와 결부된 종교적 요소들(십자가, 교회, 숭고한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여신도의 홀린 듯한 몸짓)을 더불어 보게 된다. 함정식은 모종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란 환유의 체계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환유를 작동시키는 보조관념들을 성실히 이어 붙인 다음 그러한 보조관념들의 몽타주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원관념(이라고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결코 동일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함정식은 매우 드문 방식으로 영상작품의 몽타주라는 개념에 접근하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가 몽타주를 이해하는 방식은 숏과 장면과 시퀀스 사이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전략으로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몽타주 개념은 범죄 수사에서 활용되곤 하는 초상이나 사진 몽타주, 혹은 여성에게 있어 멋진 눈, 코, 입, 귀, 이마 등에 대한 남성들의 설문을 종합해 만든 초상이나 사진 몽타주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이러한 몽타주는 초상이나 사진을 통해 지시하고자 하는 인물(형)에 대해 목격자나 증인이나 설문 응답자가 묘사한 세부를 가능한 정확히 묘사한 것이지만, 그것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오히려 보는 이에게 기묘하게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흔히 사행성 스포츠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경마를 소재로 한 전시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에서도, 몽타주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전시 공간에 배치된 영상작업들 각각이 서로 길항하는 가운데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경마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탐문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경마를 구성하는 일련의 요소들(경마장, 예상가, 새벽조교 및 경기기록 영상, 경주마 목장, 관중)의 몽타주가 경마에 대한 상투적 관념과 어긋나고 충돌하는 감각의 경기장을 마련하고 그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 전시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비롯한 함정식 작가의 영상작품들은 작가 홈페이지(hamjeongsik.com)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