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ULO 001
창간호 서문 / 목차




리서치는 흔히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선행되는 조사나 자료 수집을 말한다. 아카이브가 의미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예술적 결과물로서 다루어지는 것과 달리 리서치에 대한 논의가 적은 이유는 그것이 작가, 이론가, 비평가, 연구자, 큐레이터 등 모두의 작업에 당연시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으로 보면 다양한 개념과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어서 일반론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작업에서 리서치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결과물과 상호관련을 맺는가를 토픽으로 정하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난항을 겪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리서치라는 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했다. 

“아티스틱 리서치(Artistic Research)”라는 용어는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할 것이다. 2012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리바이어던 Leviathan>이나 베아트리스 깁슨의 <타이거스 마인드 The Tiger's Mind>와 같은 몇몇의 작업은 독특한 이미지와 감각을 전달하는데, 이들이 아티스틱 리서치에 관한 논의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용어의 이해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리서치라는 개념은 자료 조사의 방법론이 아닌 하나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그 의미를 새롭게 얻기 때문이다. 

특집으로 실린 오준호 교수의 글 「지식생산과 비판적 담론생산 사이에서 예술적 실천의 함의」는 서구에서 비롯되어 현재 논쟁적으로 언급되는 아티스틱 리서치에 관한 일종의 지도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아티스틱 리서치가 예술대학의 테두리에서 지식 생산의 방식으로 규정된 제도적 기원부터 그와 대립하여 이를 비판적 담론 생산의 실천으로 보고자 하는 지형을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번역하는 실천적 연구로서 아티스틱 리서치를 규정하자는 주장은 동시대 한국의 예술 현장에도 상당히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빈의 글 「대문자 R로서의 Research」는 영상예술의 비평 담론이 지닌 언어의 곤궁함과 텍스트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돌파할 방식으로 아티스틱 리서치의 개념과 방식을 비평에 접합할 것을 제안한다. 박이현은 민속지학적 연구의 결과물을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하버드 감각민속지학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 SEL)의 작업들을 돌아본다. 제도에서 수행하는 학문적 성과로서의 영상작업의 특징은 그것이 또한 예술적 성취임을 보여 준다. 이한범은 영국의 작가 듀오인 오톨리스 그룹의 2012년 작업 <래디언트 The Radiant>를 분석한다. 에세이 필름과 실험적 다큐멘터리의 계보를 잇는 이들의 작업은 몽타주라는 기법을 통해 이미지로써 역사를 재구성하기를 시도한다. 학제에서 생산된 감각민속지학연구소의 지적 성과물과 저항적 태도를 근간으로 비판적 담론구성을 시도하려는 오톨리스 그룹의 작업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이들이 전해 주는 감각은 묘하게 겹치고 섞여 들어간다. 이 감각이 단순히 ‘좋은 작업’으로 치환되어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간호를 준비하였다. 

나아가 아티스틱 리서치라는 개념이 현장의 예술주체들이 기댈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언어로서 확장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 예술에 관련된 제도들은 예술가에게 자꾸만 말로 설명하기를 요구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크리틱, 기금을 위한 프레젠테이션과 공모를 담당하는 행정제도는 유려한 말과 글 솜씨를 요구한다. 또한 미술관의 전시 서문은 작업과 너무도 동떨어져 보일 때가 많고 SNS상의 짧은 단상들이 작업에 대한 이해를 대체한다. 작가 토크 프로그램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장소인가? 현대 예술의 감각이 피상적인 말의 유통 속에 함몰되면서 생기는 몰이해와 피로감이 예술에 대한 부정, 예술의 무용함으로 귀결되는 냉소는 분명 풀어내야 할 당대의 중요한 문제다. 물론 현실을 구성하는 지각과 사고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너무나도 먼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그것에 틈입하기 위해 날을 벼리고 있음을 믿는다. 

창간호에는 이 외에도 힘 있는 글들을 싣는다. 강정석과 김희천의 대담은 세대론으로만 얄팍하게 규정되던 두 작가들이 두툼한 분량만큼 실은 훨씬 흥미로운 것들이 많음을 보여 준다. 강덕구가 이 둘의 작업을 관통하는 비평을 썼다.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 아피찻퐁의 <열병의 방>, <찬란함의 무덤>에 대한 리뷰도 지면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긴 준비기간을 거쳐 『오큘로』 첫 호가 나왔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또한 이 말들이 모여서 비어 있는 곳을 보고, 잡히지 않던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음을 확인한다. 어쩌면 창간호의 특집이 아티스틱 리서치가 된 것은 암묵적인 것들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한범)


Topic

지식생산과 비판적 담론생산 사이에서 예술적 실천의 함의 ..... 오준호
대문자 R로서의 Research ..... 이정빈
민속지학에서 출현한 영화들: 하버드 감각민속지학연구소(Sensory Ethnography Lab: SEL) ..... 박이현
풍경의 (재)구성: 오톨리스 그룹의 <래디언트> ..... 이한범  

Interview

X의 눈: 강정석=김희천 연속체 가설 ..... 강덕구
현위치 : 강정석 X 김희천 대담 ..... 진행: 정민구

Critic

공존과 픽션: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이상욱
장-뤽 고다르의 전쟁 이미지: <언어와의 작별>에 등장하는 전쟁 숏에 대하여 ..... 조지훈 
살아 있기, 안부를 전하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찬란함의 무덤> ..... 이정상
방의 기록: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 ..... 이정상

Essay

새벽 세 시의 뜨거운 우유 ..... 예그림


발행일   2016년 3월 2일
디자인   김형재, 홍은주 (유연주, 함효정 도움)
사   진   정민구
ISBN    978-89-94027-52-4 93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