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ULO 005
제5호 서문 / 목차





오늘날 습관으로 간주하는 것들은 한때 충격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하듯이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일상 세계에 변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미래를 현재로 번역해보려는 도박사들의 내기가 펼쳐진다. 그 예언적인 담론에 편승하면 세계의 가능성은 닫히지만 그것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이번 호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오큘로』 5호의 첫 번째 특집은 동시대 매체 환경을 체화된 언어로 구사하는 작가들과의 만남이다. 이번 호에서는 임고은, 장우진, 함정식, 정재훈과의 대담을 준비했다. 이들은 1980년대 태생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네이티브로 묶일 수도 있지만 그것 외에는 각자 지향하는 작업 방식과 세계관에서 비슷한 점을 찾기 힘들다. 다만 이들은 무빙이미지가 지나 온 역사적 맥락을 자신의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역사를 중첩시키고 시효가 끝난 것으로 판명된 낡고 단조로운 형식을 갱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물, 사건, 대상, 풍경의 형질 변화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이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가족 유사성이다. 이 네 편의 대담을 교직해보면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조류가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판별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특집으로 무빙이미지 플랫폼에 대한 네 편의 안내문을 준비했다. 역사적, 미학적, 사회적으로 열린 공간을 추구하는 이 네 플랫폼은 단순히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베를린다큐멘터리포럼은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실천과 언어를 간학제적인 큐레토리얼 및 비평적 접근을 통해 탐구한다. 라이트인더스트리는 미국 소규모 상영공간의 계보를 이어나가면서 영화관이 사회적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비전 하에 실험영화, 극영화, 비디오, 시각 예술, 다큐멘터리, 뉴미디어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한다. 온라인 플랫폼 브이드롬은 인터넷이 작품의 전시, 상영, 유통에 미치는 가능성과 한계를 점검하는 동시에 오프라인에 국한된 상영과 전시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한다. 끝으로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은 아카이빙, 상영, 출판 활동을 중심으로 고전영화, 실험영화, 독립영화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대안적인 정전을 창출하고자 한다.

무빙이미지의 현재는 축적된 역사와의 끊임없는 질문, 의심, 대화, 대결 속에서 생성된다. 먼저 인터뷰에 실린 김동원 감독과의 대담 「이야기꾼으로서의 다큐멘터리스트: ‹내 친구 정일우›로 돌아온 김동원 감독」에 주목하길 바란다. 안건형 감독은 김동원 감독을 둘러싼 지난날의 평가가 신화화되었음을 지적하고, 그의 영화적 형식이 보여주기가 아니라 들려주기에 있음을 강조한다. 김동원 감독의 신작 ‹내 친구 정일우›의 제작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크리틱에 실린 이도훈의 「문지기의 임무: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 프로그래밍에 대하여」는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프로그래밍이 정전의 정치학, 취향의 정치학, 규모의 정치학을 관성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름 없는 영화의 지위 복권과 영화 문화의 지정학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 두 글은 영화의 담론은 닫히고 고정될 때가 아니라 열리고 흐를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빛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호 리뷰는 특집에 버금갈 정도로 풍성하다. 김응수의 ‹옥주기행›, 켄 번스의 ‹남북전쟁›, 존 지안비토의 ‹비행운(클락)›과 ‹항적(수빅)›, 클레베르 멘동사 필류의 ‹아쿠아리우스›에 대해 밀도 있는 리뷰를 보내준 필자들 모두 영화의 존재론적 기능에 대해 고민한다. 이들은 영화가 기억, 역사, 현실을 환기시키는 매체라는 지점에 주목하고 그것이 영화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을 동시대적 맥락과 겹쳐 놓는다. 대미를 장식하는 김보년의 글은 로메르가 영화에 관해 쓴 글 모음집인 『The Taste for Beauty에 대한 리뷰이다. 로메르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영화를 통해 낯설고 불길한 감각을 일깨우는 ‘이상한’ 감독이지만, 그의 다채로운 이력도 예술의 진화론적 발전과 그것의 순환적 주기를 믿고 따르는 그의 영화관 안에서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무빙이미지의 생태계는 전쟁터인 동시에 놀이터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둘러싼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창과 방패 놀이를 하는 이 장소는 불길한 긴장이 언제든 환희의 전율로 바뀔 수 있는 곳이다. (이도훈)


특집 1: 시네마 이후, 우리 눈에 비치는 세계: 네 개의 대화
이한범  중첩된 세계의 안팎에서: 임고은 작가와의 대화
이도훈  시간의 흐름과 마음의 풍경을 찍다: 장우진 감독과의 대화
김민엽  프레임을 만지면서 비디오 보기: 함정식 작가와의 대화
강덕구  모험, 산, 환상방황, 개, 소음, 빛: 정재훈 감독과의 대화

특집 2: 무빙이미지 플랫폼
김신재  베를린다큐멘터리포럼 Berlin Documentary Forum
이한범  라이트인더스트리 Light Industry
박가은  브이드롬 Vdrome
강덕구  오스트리아필름뮤지엄 Austrian Film Museum

Interview
안건형  이야기꾼으로서의 다큐멘터리스트: ‹내 친구 정일우›로 돌아온 김동원 감독

Critic
이도훈  문지기의 임무: 동시대 한국의 시네마테크와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대하여

Review
권은혜  ‹옥주기행›의 음악적 체험에 대하여
권세미  잃어버린 기록에 대한 애도의 시간: 켄 번스의 ‹남북전쟁›
박진희  평화를 위한 병참학: 존 지안비토의 ‹비행운(클락)›과 ‹항적(수빅)›
유지완  영화는 위태로운 장소에 산다: 클레베르 멘동사 필류의 ‹아쿠아리우스›
김보년  이상한 감독, 에릭 로메르: The Taste for Beauty를 읽으면서


발행일  2017년 7월 31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표지 디자인 유연주)
ISBN   978-89-94027-79-1